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생각

슬픔을 가지치기 한다.

죽음이 사람을 슬픔으로 열 오르게 하는 건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헤어짐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만큼 슬프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건 당시 나에겐 슬픔도 슬픔이지만 문제는 슬픔의 지속기간이었다. 

그래서 누나들에게 이렇게 영원히 슬프면 우울해서 어떻게 사냐고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 다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난 너무 슬퍼서 믿을 수가 없었는데 한 일주일인가 지나니 마치 거짓말처럼 감정이 스르륵 페이드아웃되는 걸 경험했을 때, 그때의 그 황당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슬픔이 무슨 물체라도 되어서 누가 그걸 갖다 줬다가 도로 가지고 간 것만 같은 그런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된다. 

어떤 것은 풍화가 되다, 되다 결국엔 마지막 한 줌 가루가 되어 그마저도 바람에 쓸려가지만 또 어떤 것은 종래에도 완전히 다 쓸려가지 않고 최후의 덩어리로 남아 화석이 되기도 한다. 나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지길 바란다. 


                                                          이석원  <보통의 존재>

 

 

 


 



지난주 제주도에 일 때문에 간 사이 올케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제주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미리 도착해서 여행중인 엄마, 큰언니와 합류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자세히 들었다. 

우리는 모두 제주에 있었고,

형부의 수술로 작은언니는 꼼짝할 수 없었고,

내 남편은 지방근무중이었기에...

결론적으로 올케언니 아버지의 장례식에 시댁식구인 우리들 중 누구도 참석을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아버지의 죽음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20년 전 5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다림질을 열심히 하고 있던 나는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작은언니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 전화를 받은 후 아버지가 계신 영안실에 도착할 때까지의 기억이 내겐 없다. 

그 부분만을 살짝 도려내어 폐기처분한 것처럼.

기억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존재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그 순간은 끔찍했고 급박했었다.


아버지를 병원 영안실에 모시고 3일장을 치는 내내

날씨는 청명했고 체감 기온은 서늘하며 적당했다. 

눈부신 오월의 날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위로해 주는 거라

혼잣말하곤 했다. 


3일 내내 나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아버지를 고향 선산에 입관할때는 

빈속에 마신 소주 한잔 때문인지....

영영 이별이라는 괴로움때문인지....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동네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겨우 몸을 추스릴 정도로.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어 낸

그 며칠 사이 나는 체중이 7킬로 가까이 줄어들어 버렸고

우리 가족은

건강하던 아버지의 비명횡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버지 영정사진 앞에

매 끼니때마다 식사도 가져다 놓았다. 

가족 전체가 정신을 가출시킨듯한 상태로 

어떤 일을 해도 어설펐다.

우리 중 누구도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


당시 너무 슬퍼서 아버지를 따라 죽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랬던 마음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퇴색되었다.

빛바랜 마음을 보며 내가 불효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럽던 슬픔이

자연스레 그 부피를 줄여나가면서

내게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이라 믿었다.

그런 나를 보며 저승의 아버지는 다행이라 여길거라 생각했다.


세상 모든 슬픔이 이석원의 말대로 물건 맡겨놓았다가 찾아가 버린 것처럼... 

그렇게 깨끗이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가슴 속 가장 밑바닥에 딱딱하게 뭉친채 딱지처럼 앉아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을 다 끊어낼 것 같은 슬픔도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게 된다. 


슬픔이

처음 돋아나 커다랗게 자리잡은 그때와 똑같은 크기를 유지하며

자신의 몸집을 줄이길 거부하면....

그 큰 슬픔을 내재한 

우리는 도대체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어려워도

돋아나고 커져가려는 슬픔의 가지를

정성껏 가지치기 해주어야 한다. 

웃자란 슬픔의 가지가 

여기저기 헤집으며 모두를 해치지 않도록.

조용히 가지치기하면서

슬픔을 달래야 한다. 


그래야 내 아버지와의 추억을 아름답게 되새길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