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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정상인 척 살아가는 편의점 인간



아주 오래전 '질투'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이 주인공이었는데, 드라마 속에서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항상 등장했다. 당시 동네 가게나 슈퍼마켓만 주로 이용하던 사람들한테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은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명료하게 깨어 있으면서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가게라니... 편의점은 손님을 위해 태어난 편리한 가게의 정점처럼 여겨졌다. 당시 세븐 일레븐은 잘 사는 동네를 위주로 몇 군데 있지도 않았고 고로 나는 그때까지 편의점에 가본 적이 전혀 없었다. 


그로부터 25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 상가 안에 이름이 다른 편의점 두어 개가 동시에 입점될 정도로, 편의점은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가게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어린시절 자주 이용했던 동네 구멍 가게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어쨌든 편의점은 깔끔하게 정리정돈 된채 수 많은 종류의 상품을 구비하여 손님맞이를 한다. 편의점은 우리의 일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간이 틀림없다.


<편의점 인간>은 어렸을 적부터 보편적인 감수성이 조금은 결여된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가 편의점 매뉴얼대로 살아감으로써 세상의 편견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죽은 새를 구워먹자 하고, 싸움하는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삽으로 친구의 머리를 내리치며, 잔소리하는 여선생님의 히스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선생의 스커트와 속옷을 확 내려버리는 행동을 한 게이코는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평균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

게이코는 자신의 감성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편의점 알바로서 대학때부터 18년간이나 생활한다. 편의점 다른 직원들의 취향과 말투를 적절하게 취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취업이나 결혼, 출산, 육아 등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삶만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게이코는 자신의 정체성에 타인의 개성과 모습을 덧입혀 생활하는 쪽을 택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초등학교 시절의 그때처럼 조금 물러나서 나에게 등을 돌리고, 그래도 어딘가 호기심이 섞인 눈길만은 기분 나쁜 생물을 보듯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 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2p)



왜 직업을 구하지 않는지, 왜 결혼하지 않는지, 왜 연애하지 않는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세상은 평균적 잣대에서 벗어나는 누군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할 이유는 없지만, 답하지 않으면 또 다시 자신들만의 편견으로 대상을 난도질해댄다. 


도대체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늘 궁금했다. '정상'이라면, 그 범주에 속한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수준의 '정상'인 것인가? '정상'의 등급을 받은 무리 속에서도 수준과 순위는 또 다시 세분화되기 마련 아닌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 잣대로, '정상' 속에서의 세분화 작업을 또다시 하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정상' 속의 '최정상'이 아닌 나머지는 모두 '비정상'의 무리로 간주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누구더러 평범하게 일반적으로 '정상인 척'하며 살라고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세상의 잣대로 사람들을 재고 나누는 그들이, 결국은 정상인 척 꾸며대며 사는 그들이야말로 비정상 상태의 인간들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게이코는 스스로를 사회에서 소거되어야 할 이물질로 인식하고, 시라하 라는 사회부적응자를 만나면서 더욱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게 된다. 그러면서 본인의 평생 일터였던 편의점도 그만두며 혼란을 겪는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정상인처럼 살기위해 억지로 다른 직장의 면접을 보기로 한 당일, 게이코는 직장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가 그곳의 활기찬 모습 속에 동화되며 그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스스로가 가장 자신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상인 수준에 맞춘 강요된 직장 대신 그녀는 정상인들의 편견을 감내하며 편의점 인간으로 남겨질 생각을 하는 듯 하다.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게이코에게서 보면서, '나 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