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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노바디의 여행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가끔씩 노바디 또는 섬바디가 된다고.

 

김영하 작가는 귀환하는 오디세우스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섬바디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허영과 자만으로 화를 자초한 이후부터는 노바디로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 덕분에 고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184쪽

10년간 호된 고난을 겪은 오디세우스는 그 후로 신중해집니다.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가서도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지요.

자신이 없는 틈을 타서 아내인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던 수많은 무뢰한들을 축출하고 그들을 도운 시녀들을 일시에 제거합니다.

명궁 에우리토스의 활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던 구혼자들을 물리칩니다. 바로 그 장면이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되어 전시가 되어 있더군요.

                                                     오디세우스의 활 by 베르나르 뷔페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는 여행지에서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고 이야기하는데요.

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의 정체를 드러내어 섬바디(누군가)가 되고요. 비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감추어 노바디(아무것도 아닌)가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노바디'로 때로는 '섬바디'로 '나의 존재'를 규정해가면서. '나'이기도 했다가 '나 아닌 나'가 되기도 하면서 여행을 지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185쪽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 주소로 

https://blog.naver.com/leeha517/221633065998

 

김영하 작가의 '노바디'와 '섬바디'. 오디세우스를 통해서 본 자만과 겸손. <여행의 이유>

​어저께 베르나르 뷔페전 소개를 드렸는데요. 사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자꾸만 포스팅이 길...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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