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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사람의 빈자리

나와 굉장히 친한 선생님이 세 분 있는데, 이 셋과 나의 관계는 묘하다.  친하지만 거의 안 만난다. 2년에 한번 보기도 하고, 1년에 한번 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하다. 오랫만에 만나도 바로 어제 만나고 헤어진 것처럼 그렇게 친하다. 

 

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내게 전화를 한다. 안 만나는 대신 우리는 전화로 모든 걸 해결한다. 죄다 노안이 온지라 카톡 길게 하는 걸 싫어한다.

 

나는 그들과 10여년 전쯤 따로 따로 만나서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여러 책과 글을 함께 읽고 느낌을 나누는 벗이 되었다. 나보다 다들 나이가 많다. 한 살에서 최고 일곱살까지 많은 이 선생님들은 지금도 여전히 학구열이 넘쳐 흐르는 사람들이다. 

 

제일 연장자는 재작년에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지금도 소논문을 쓰면서도 창의적 글쓰기를 한다)  

또 다른 분은 올해 대학원 문창과에 입학했다 (교수님들한테 배울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창작활동을 쉼없이 한다)  

다른 한 분은 글쓰는 모든 일을 의욕적으로 해낸다(기념사업회에서 일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식들 교육은 또 어떠한가. 서울대, 연대를 기본으로 보냈지만 누구 하나 잘난 척 한번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난척은 커녕, 만나면 서로의 힘든점, 서로의 못난점, 서로의 부족한 점, 배우자와 자식들의 험담까지 봇물 터지듯 쏟아 놓는다. 

 

인생을 반듯하게 살아왔고 나이들어도 겸손한 자세로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며, 장성한 자식들도 제몫의 인생을 살아주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다들 나름대로의 아픔과 힘겨움이 있다. 그때마다 배운다. 인생이 때론 불공평하게 여겨져도.... 누구도 처음부터 끝까지 쉽기만한 인생은 없다고... 그런 면에서 공평한 듯 보이기도 한다고.

 

제일 연장자 선생님의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다. 또 한분의 어머니가 올해 3월 돌아가셨고 나머지 한 분의 어머니가 어제 돌아가셨다. 

세 분 모두 어머니를 잃은 딸이 된 것이다. 어머니를 여읜채 살아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중년에 접어든 우리지만 그래도 기댈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 못할 슬픔이다. 

 

돌아가신 내 벗의 어머니께 꽃을 놓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가시는 길, 조심하시라고...

그곳에선 평안하시라고...

혹여 마음의 여유가 생기시면

따님의 인생도 한번씩 들여다 봐주시라고...

너무 버겁게 살지는 않는지 살펴보시며

꿈에라도 가끔 나타나 힘이 되어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인생.

어머니가 가신 빈자리.

좋은 사람들이 내 벗들의 곁을 채워주었으면 한다.

 

 

 

 

<풍장>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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