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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햇살 아래 녹차 한 잔



우리 집은 해가 뜨는 아침부터 지는 저녁까지

하루 종일 햇빛의 영향권에 있다.

타워형 아파트인데 그중에서도 운 좋게 

해가 잘 드는 라인이다.

이 동네에 이사와서 이래저래 마음 고생만

심하게 해서 집을 원망하곤 했었는데... 

해 잘 드는 밝은 집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햇빛이 생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내가 우울해보지 않았을때는 잘 몰랐다.

비많이 내리고 날씨가 흐린 유럽쪽 나라들의

자살율이 날씨와 많은 연관이 있다고 할때에도

그저 흘려들었다. 


그런데... 내 기분이 몹시 우울했던 날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온 세상이 어두컴컴해지자

그대로 땅을 파고 지구 중심부까지 내려간 듯한

심정이 되어버리는 걸 경험했다. 

그때의 심란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눈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울 때

이마 위로 서서히 내리비치는 아침 햇살 덕분에

나는 또 다시 일어나 눈을 뜨곤 했다. 

힘들어도 새날이다.

해가 날 위해 오늘도 힘을 내준다고 생각했다.

지친 몸을 일으켜 

하루의 새로운 해를 맞이했고

할 수 있는 한 양껏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냈다.


너는 

인간성이 별로이니 제외

너는 

능력이 없으니 제외

너는 

못생겼으니 제외

햇살은 그런 게 없다.

한번 내리쬐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햇살을 선사한다. 


그 관대하고 또렷한 햇살 아래에서

아침 녹차 한잔을 마신다. 

밤새도록 뒤척이며

걱정의 산더미 속을 헤매다닌

내 심신이 그제야 위로 받는다.

그 기운으로 오늘 하루를 또 살아보자

작고 여린 마음일지라도

그 마음을 내어보곤 했었다.


나에게 

햇살이란 그런 의미이다.

축축하게 다 쭈그러들어간 내 마음을 

바싹 말려 탈탈 털어 보기좋게 개어놓아 주는...

벗같은 존재.

아침 햇살 고맙다.


더불어 녹차 한 잔...

너도 감사해.





녹차    -  박혜선


돌돌 말려 있어도

바짝 말라 있어도

숨은 쉬고 있었나 봐요.


뜨거운 물속에서

파라락

파라락

몸을 펴며 

되살아나요


있는 힘 다해

펴 놓은 잎사귀에서

초로로록

초록 숨이 빠져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