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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시간관리 프로젝트 30일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

 

1~77p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첫번째 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출간된지 10년이 된 책이다. 10년 전에 읽고 최근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올해 70세가 된 그가 여전히 달리기를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1978년 데뷔이래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변함없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는 하루키에게서 달리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날마다 10킬로미터 이상을 달리고 매년 전세계를 돌며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달리기는 쓰기만큼 중요해 보인다. 아니, 쓰기 위해 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이전에 일본에서 작은 술집을 경영했는데 성격상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타입이라서 경영이 잘 되었던 모양이다.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새벽 시간을 이용해 소설 쓰기를 3년간이나 했던 그는 당시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되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두 편의 소설을 낸 후 가게를 미련없이 접고 전업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전 작품들보다 조금 더 스케일이 큰 탄탄한 내용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그는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펴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수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이렇게 전업 소설가로서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었던 하루키는 뜻밖의 건강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었던 탓에 앉아서 글만 쓰게 되자 체중이 늘어났고 하루 60개비 이상의 담배를 피워 체력도 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남은 생을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 유지를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달리기였다. 동료나 상대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한 장비나 도구도 필요 없고, 정해진 장소로 가지 않아도 되는 운동, 달리기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에 딱 들어맞았다. 

그는 후천적으로 익혔던 습관 중에서 달리기가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고 지는것에 관심이 없는 그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만 주목한다. 그런 관점에서 장거리 달리기는 그만을 위한 맞춤형 스포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쪽

 

유명 작가들은 작업이 잘 된다고 해도 정해 놓은 일정량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나 정량만큼의 원고만을 쓴다는 것이다. 예전에 헐리웃 키드의 생애와 글쓰기 만보, 하얀 전쟁등을 쓴 작가 안정효는 하루에  A4용지 한 매 분량의 글을 쓴다고 했다. 충동적인 영감이 들면 그보다 더 많이 쓰게도 되지만 결국 뒷날 다시 손질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지금은 쓰는 분량이 더 늘어났을지 모르겠으나, 작가들은 그만큼 정해진 분량을 매일매일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날은 벼락처럼 쓰고 그로부터 몇날 며칠, 몇주씩 건너뛰는 것은 전업 작가의 자세가 아닌 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창작의 과정에서 '지속하는 힘'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된다. 날마다 1%씩 나아지면 복리로 쌓여서 1년 후 37배의 효과가 있게 된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하루키는 소설과 마라톤 풀코스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과거의 나 보다 나아졌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은 소설과 마라톤에서 똑같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부분이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40쪽

 

그래서 그는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평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화가 나면 스스로에게 분풀이를 한단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수긍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다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소설이라는 그릇 속에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작가의 말이 비장하게 들린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 독자와의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65쪽

 

한 분야에 집중하는 힘과 그의 성실한 자세가 오늘날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있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7년간 운영했던 술집 경영을 '열린 생활'이라고 말한다. 그때의 그 경험이 소설을 쓰는 밑바탕이 된 것이라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그런 생활을 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고 자평한다.

그 후 전업작가로 돌아서면서 그는 철저히 '닫힌 생활'을 고수한다. 원래부터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일상은 잃어버린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의 복귀였다. 그리고 몸을 혹사하고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가능한 글쓰기 작업을 위해 하루키는, 서른 세살 나이에 러너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그 시기는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소설들은, 그가 달린 거리만큼 정직하게 성장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쓰고, 날마다 뛰는 수행자같은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에게 쓰는 행위, 뛰는 행위는 '세상의 방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그만의 의식, 리추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