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생각

불행은 사유재산이다.

 

 

이 책의 저자인 소노 아아코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어렸을 적부터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선천적 고도근시로 일상생활도 크게 불편했다고 한다. 그녀는 50대에 접어 들면서 또 다시 큰 위기를 겪는다. 중심성망막염이 양쪽 눈에서 발견되면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주 위험한 수술이어서 시력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맡고 있던 연재를 모두 포기한다. 읽고 쓰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면 수술이 실패한 후의 '처신'에 대해 고민했다. 마사지 받는 것을 좋아해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니 맹인이 되면 마사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소설을 계속 쓰고 싶다는 미련도 남아 있었다. 눈이 안 보여도 얼마든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위로해주는 분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말을 납득할 용기가 없었다. 소설은 수차례 반복해서 읽고 퇴고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특히나 장편일 경우 이런 과정은 필수다.   69쪽

 

그녀가 수술이후의 삶을 소설가에서 마사지사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그녀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을 고통의 순간들을 상상해 보았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 태어난 어느 누구도 기쁨만으로, 희망만으로, 행복만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거라고 중얼거려 본다. 

 

위험한 수술을 앞둔 그녀는 우울증세를 앓으면서도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터키 여행을 감행하게 된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400킬로미터 떨어진 앙카라로 곧장 이동하는 길은 비포장 자갈길이었다고 한다. 도착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중간에 식당은 없어서 과자를 나눠먹으며 요기를 하던 그때. 그녀는 해질녘 창밖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해 옴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죽음을 떠올리지 않았다. 오직 언제쯤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결핍'에 의해 얻어진 생활에 대한 실감이었다. 염려와 공포는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생겨난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발견한 사실들 가운데 가장 멋진 발견이었다고 자부한다. 143쪽

 

생의 큰 깨달음을 얻은 그녀에게 선물처럼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시력을 잃을거라던 위험한 수술 후 오히려 완전한 시력을 회복하여 50년간 쓰던 안경까지 벗어던지게 된 것이다. 삶의 아이러니다. 집착하고 고민하던 일을 탁 내려놓는 순간, 의외로 풀리게 되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마법같은 면인가 보다.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삶과 어깨를 견주며 다가와서인지 훨씬 더 큰 울림이 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내온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순간과 운이 없었던 날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음에 동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싸워온 세월들이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부와 권력과 행복이 뒤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게으로고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밑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소소한 발견의 재미를 알아나가는 것도 지혜라고 해야겠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인생은 좋았고, 때론 나빴을 뿐이다.   74쪽

 

불행도 엄연한 사유재산이라고 말하는 그녀이기에 상처마저 삶의 거름으로 능숙하게 바꿔 나가는 것 같다. 그녀는 당연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을 두고 재능이라 부른다. 재능이라 부를만큼 '감사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는 역설일 것이다. 인생을 알게 될수록 자신이 얻은 것의 대부분이 우연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게 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매순간이 나에게 행운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기준은 감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의 삶의 상처, 자신에게 온 삶의 결과물과 온갖 감정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기 시작할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거리두기'여서인지, 저자의 책 곳곳에서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150페이지의 손바닥만한 에세이집. 기특한 내 선택으로 현자의 지혜를 배우게 되었던 것일까??? 아니다. 이 또한 우연이고 운명이었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게 벌어지고 일어나는, 불행까지 포함한 그 모든 일들과 숱한 희노애락에 대한 감사뿐이다. 감사하는 태도를 재능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때까지 더 비우고,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해지기. 나를 더 들여다보기. 내가 할 일들이다. 

 

 

 

한정판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 책읽는 고양이에서 출간해서 고양이인 듯.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적 오만을 극복하라  (4) 2019.05.30
나만 아는 내 별자리  (4) 2019.05.29
첫 조각 내리치기  (5) 2019.05.27
센트럴파크 밤마실  (4) 2019.05.26
가살&헤살  (4) 2019.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