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생각

첫 조각 내리치기

어렸을 때 형제들이랑 도미노 놀이를 곧잘 했었다. 도미노 조각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구역을 나눠가면서 각자 몫을 조심조심 세워나갔다. 사촌까지 와서 합세를 할 때면 판이 점점 커진다. 조각들을 거의 다 세워 갈 때쯤 누구 한 명의 사소한 잘못으로 조각 하나가 쓰러지면서 줄줄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전부 쓰러져버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전쟁이 일어난다. 소리 지르고 '네 탓이다, 너 빠져라.'를 외친다. 그렇게 몇 번 싸우고 나면 도미노 놀이를 안해야 정상인데 잊혀질만하면 그걸 또 한다. 윷놀이 할 때마다 싸우고 매번 다시 하는 거랑 같다. 놀다 싸우고, 싸우다가 다시 놀고. 세상 모든 놀이들의 패턴이다.

 

https://pixabay.com

 

나중에는 꾀를 써서 중간 중간 도미노 조각 몇 개씩을 빼놓기도 했다.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해서 전부 쓰러지게 할 수는 없으니 조각을 빼놓은 그 부분이 나름의 보호장치였던 셈이다. 나머지를 다 세워 놓으면 형제들 중 가장 신중한 사람이 중간 빈 곳에 도미노 조각을 정말 조각刻하듯 세밀하고 섬세하게 끼워 넣는다.

모든 것이 완료된 후 제일 첫 도미노를 쓰러뜨린다. 일정 간격을 두고 세우지 않을 경우는 앞 조각이 뒷 조각을 정확히 때리지 못하는 바람에 쓰러짐의 연쇄 작용이 중간에서 딱 멈추기도 한다. 그것만큼 김빠지는 일도 없지만, 도미노 놀이를 할 수록 요령이 생겨서 위치와 간격을 귀신처럼 잘 맞추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첫 도미노가 쓰러지면서 마지막 도미노로 연결될 때까지의 과정들은 작품이 된다. 촤르르륵.... 쓰러지는 도미노 조각들은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명이었다. 앞조각의 에너지를 받아 뒷조각에게 전달해주는 도미노 조각들. 다 쓰러져버린 그 눈 깜짝할 시간 앞에서 가끔은 허무하기도 했지만 배운 것이 있었다.

첫번째 조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긴긴 도미노 조각들의 행렬을 쓰러뜨릴 단 하나의 조각은 제일 첫번째 녀석이었다.

 

https://pixabay.com

 

며칠 전 <원씽> 책에서 도미노 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의 어릴적 도미노 전쟁이 떠올랐다. 막연한 그 도미노 놀이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담긴 줄 몰랐다.
'세상 모든 위대한 변화는 차례로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시작된다'는 말에 가슴이 설렜다.

책에 나와 있던 도미노 효과중 과학자 론 화이트 헤드의 <미국 물리학 저널>에 실린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는, 도미노 한 조각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도미노들을 전부 쓰러뜨릴 뿐만 아니라 자신 보다 훨씬 큰 것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개의 도미노는 자신보다 1.5배 큰 조각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론 화이트 헤드의 주장을, 2001년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의 한 물리학자가 증명해 보이게 된다.
합판으로 만든 첫번째 도미노 조각은 높이 5센티이고 맨 마지막 8번째 조각은 90센티 가량이었다.

즉, 첫번째 5센티 도미노에 계속 1.5배를 곱한 크기로 조각들을 세워 나간 것이다.
(5x1.5x1.5x1.5x1.5x1.5x1.5x1.5= 85.4296875센티. 거의 90센티)
그리고 결국 5센티짜리 첫번째 도미노가 90센티 가까운 마지막 8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려 버린다.

여기에서

일반적인 도미노(크기가 같은 도미노)는
등차수열(서로 이웃하는 두 항 사이의 차가 일정한 수열. 1,3,5,7,9..... 2씩 차이 난다)

론 화이트 헤드의 도미노(1.5배씩 큰 도미노)는
등비수열(초항에서부터 차례로 일정한 수를 곱하는 수열. 1,2,4,8,16,32,64.....2씩 곱한다)

등비수열이 적용된 론 화이트 헤드의 5센티짜리 도미노에 1.5를 계속 곱해나가다 보면

18번째 도미노는 '피사의 사탑' 크기만 해지고
23번째 도미노는 '에펠탑' 크기만 해지며
31번째 도미노는 '에베레스트 산 보다 900미터 더 높은' 크기이고
57번째 도미노는 '지구에서 달에 이르는 거리' 만큼이나 커진다고 한다.

등비수열은 아주아주 긴 기차와 같아서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속도가 멈출 수 없이 빨라진다고 한다. 영화 설국열차도 떠오르면서... 도미노 효과에 얽힌 등비수열의 엄청난 위력을 알게 되었다.

내가 쓰러뜨리는 도미노 한 개가 등비수열에 따른다면 에베레스트보다도 더 거대한 것들까지 쓰러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작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이 그대로 제자리겠지만, 시작만 하면 세상 무엇이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바꿀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원씽>의 저자는 도미노 효과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매일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첫번째 도미노 조각을 찾아 있는 힘껏 내리친다고 한다. 성공은 동시다발적인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첫번째 조각을 찾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결국 선형으로 시작된 것이 등비수열을 이루며 기하급수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도미노 효과는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고, 오늘의 할 일을 정할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한번에 하나씩, 연속하여 쌓으면서 오랜시간 지속되어야만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각의 목표가 하루의 목표, 한주의 목표, 한달의 목표, 한해의 목표, 5년의 목표, 최종 목표로 진화되어 나갈 수도 있다. 도미노 한 조각 한 조각이 쓰러지면서 상상도 못할 에너지들의 연쇄 반응이 우리 인생에서도 일어날지 모른다. 끝은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니까.

숱한 시행착오로 인생의 도미노 조각들을 중간중간 마구잡이로 넘어 뜨려본 적 있는 나는 이제 신중하게 다시 시작하려 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의 새날에 매번 주어지는 그 첫 조각을 내리칠테다.
그리고 그냥 믿으려 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때론 볼 수 없어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진실에 기대어, 나는 간다.

 

 https://pixabay.com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 아는 내 별자리  (4) 2019.05.29
불행은 사유재산이다.  (4) 2019.05.28
센트럴파크 밤마실  (4) 2019.05.26
가살&헤살  (4) 2019.05.25
한 놈만 팬다  (4) 2019.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