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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하늘이 너무 예뻤다.

토요일 새벽 독서 모임 가는 길에 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휴대폰을 주섬주섬 찾으려는데 그새 신호가 바뀐다. 계속 직진을 해야 모임 시작 10분 전 쯤 여유있게 도착을 한다. 그런데 눈 앞에 아른거리던 그 하늘을 못 잊겠는 거다. 카레이서 버금가게 핸들을 좌로 꺾어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았다. 나는 그 순간의 하늘과 구름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5분을 내게 쓰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대체 날마다 보는 그 하늘과 그 구름이 뭐가 다르다고 그러는 거니???

그래 맞다.  그 하늘이 그 하늘이고, 그 구름이 그 구름이다. 근데 그 하늘과 그 구름을 볼때 마다의 내 감정은 단 한번도 똑같았던 적이 없다. 나는 하늘과 구름과 더불어 그때의 내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내 감정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지 않게 사진 속에 꼭꼭 눌러 담는다. 

 

 

사진을 찍고 늘 주차하던 독서모임 건물 옆 공터에 갔는데, 차를 세울 수가 없었다. 공터에서 건물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급당황. 돌발상황이다. 

'어떡하지? 나는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워 본 적도 없는데. 거기는 일방통행 길이라 주차장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때부터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일단 약속시간은 지킨다는 나만의 불문율이 있는데다가, 주차장 위치도 모르는데다가, 다른 공터에 세우기도 마땅치 않은데다가... 모든 상황이 날 배신하는 듯 했다. 

 

'아, 사진만 안 찍었어도....5분 여유있는 건데.... '

후회는 늘 자존감을 깎아먹는다. 이 모든 게 다 네 탓이야....그러면서.

 

겨우 이 정도 일에 자존감을 깎일 수는 없어서 정말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어찌어찌 주차장을 찾아냈다. 주차장 찾아내는 게 무슨 일이라고 초인 어쩌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는데... 나는 심각한 길치이고  10분 이상 운전해 본 적 거의 없는, 갔던 길만 곧이곧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고 다니는 정직한 운전자이다. 그런 내가 일방통행길에서 낯선 건물의 주차장을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찾아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거다.

 

'세상에, 이 나이에 혼자 주차장도 잘 찾네. 뭐야, 천재여???'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독서모임 시작 7시에 빠듯하게 참석했다. 새벽부터 혼이 반쯤 빠진 채였지만 모임은 즐겁고 재미있었다. 내 영혼의 단짝, 커피 믹스로 당보충도 해서 견딜수 있었다. 

 

 

 

 

 

독서 모임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됐는데, 솔직히 그 쉬운 것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글쎄 출차하려는 순간, 건물 주차장 요금 계산소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눈 앞의 무인 주차 차단기가 열리지 않았다. 

차를 뒤로 뺐다가 앞으로 갔다가, 왔다리 갔다리. 그러면서 혹시 뒷차가 나올까봐 걱정하는 통에 또다시 식은땀이 뻘뻘. 새가슴이 벌렁벌렁.

그 시간이 정말 지옥문 앞에 서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차들이 내 뒤로 몰려 나왔다.ㅜㅜ   마침 뒷차가 독서모임의 친절한 선배님이어서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밥 한술 뜨는 둥 마는둥 하고는 그대로 쓰러져 잤다. 거의 기절 수준으로. 주차 차단기 쇼크가 컸던 거다. 나는 정말 가슴 속에 아주 아주 작은 새 한 마리를 키우는 게 맞다. 놀라면 그 새와 함께 바로 수면모드로 전환된다.

 

 

 

 

내 뒤로 줄줄이 차는 늘어서는데 내 앞의 차단기는 올라가지 않는 상황. 하늘로 솟든지, 땅으로 꺼지든지 하고 싶은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이 살면서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여러가지 변명들은 다 떠올려 봤던 것 같다. 늘 그랬다. 변명하러 세상에 태어난 사람마냥. 

 

첫번째, 자기 원망.    

다른 공터 놔두고 뭐하러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까? 운전도 못하면서. 

두번째, 타인 원망.    

독서모임에서 무료주차 정산해주던데 나만  안 해준 걸까?  

세번째, 시스템 원망.  

무슨 차단기가 신용카드 계산도 딱딱 못하는 걸까? 

네번째, 세상 원망.    

왜 하필 지금 옆 공터에 건물 지어서 주차 못하게 하는 걸까? 

 

처음엔 얌전하고 소박하게 '내 탓'을 하였으나 갈수록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남 탓'을 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던 적도 있었다. 내 마음이 넉넉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을 꼭 챙겨서 나름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큰데 비해 여유가 없을 때는 자의적인 해석을 남발했다. 그러고 나서 돌고 돌아 그런 상황의 시발점을 찾아 꼭 후회하고 비난했다.

 

그날의 시발점은 바로 '하늘은 예뻤고, 나는 사진을 찍었네.'였다.

예전 같으면 자아성찰 후

'하늘은 구리고 또 찍으면 짐승'

대부분 이렇게 부정적이고 자학적인 결론을 내렸을 거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다시 이 하늘을 봐 버렸다. 

하늘은 여전히 예뻤다.

사진을 또 찍고 싶었다.  

신호등은 짐승 말고 사람 형상인 채 집에 가라며 초록불을 밝힌다.

 

나는 직진하다가....

직진 잘 하다가...

.

.

.

다시 우회전해서 왔던 길을 도로 간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내 나이 오십세.

나는 내 실수를 탓하지 않고.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그래서

남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그것이 무엇이든지

즐겁게 다시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해서 내 품에 안긴 하늘이.

참 파랗다. 

그리고 예쁘다.

이번 주에 다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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