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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또래지향성을 접하다

독서모임 두 번째 참석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은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였다. 단순 육아서인줄 알고 토요일 모임을 위해 바로 전날인 금요일 오후부터 책을 읽었다. 가족들이 방해만 안하면, 집중만 잘하면 금세 읽겠지 했는데 결국 새벽까지도 끝부분을 다 읽지 못했다. 읽으면서 멈추고 또 멈추었기에 진도가 빠르게 나갈 수 없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핵심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건강한 애착관계 형성'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애착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애착의 정도와 애착이 지속되어야 하는 기간, 자녀의 또래관계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또래관계에 함몰된 자녀들의 문제점등... 처음 알게 된 개념과 내용이 무척이나 많았고, 육아를 하는 엄마의 입장으로 읽다보니 어떤 이야기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되지 않았다. 

 

 

또래지향성이란 또래 집단이 부모를 대신해 아이에게 주된 영향을 끼침으로써 부정적인 결과를 양산하는, 현대 사회의 한 특성을 말한다. 5쪽

 

 

새끼 오리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것을 어미라고 믿고 따라다니는 것처럼, 아이들은 지향 본능이라는 것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방향 감각을 익혀야 하며, 그 누군가는 마땅히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아이의 지향 본능이 부모에게로 온전히 향하게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또래들과 또래 문화를 향유하며 심각한 문제를 양산해 나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 근원에는 아이들이 부모와 또래를 동시에 지향할 수 없다는 이유가 들어있다. 즉 부모와 또래가 제시하는 상반된 의도와 가치로인해서, 부모와 또래 모두에 대한 애착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미성숙한 존재의 애착뇌는 서로 다른 방향의 애착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정서적 혼란에 빠지고 행동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부모와 또래 사이에서 충돌하는 상황이 오면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더 소중한 하나를 택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또래를 선택하게 되면 또래집단이 자신의 삶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부모들의 모든 관심은 간섭으로만 여겨지고 부모 자녀간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들어서 버린다.  

 

이런 상황은 요즘 아이키우는 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양육의 초반에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끈끈했던 애착관계가 아이의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커져갈수록 훼손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또래집단은 단순 친구를 넘어 부모와 경쟁하는 애착관계로 변해버리게 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아이에게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부모나 어른의 영향력이 '또래'들로 인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우정이 가능해질 때까지 아이에게는 애착이 필요할 뿐, 친구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유일한 애착은 가족과, 아이를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과의 애착이다.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보살펴 주는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만 발전하는 성숙이며, 진정한 우정은 그것의 결실인 것이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어른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이다.  

 

우정에 대해 한마디만 더 덧붙이면, 발달상 아이들은 또래들과의 관계보다 자신과의 관계가 훨씬 더 필요하다. 즉 자의식과 내적 경험의 분리가 일어나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이런 능력도 성숙의 산물이다. 315쪽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입학과 동시에 교우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친구 맺어주기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나 역시 친구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원치 않는 여러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는데 아이는 거부를 했다. 이 책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또래 관계에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오히려 그런 의도적 관계를 마련해주려던 나는 참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였다. 온전히 내 아이만을 바라보고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시해 주었어야 했는데, 타인을 바라보고 그 기준에 맞추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잘못 맺어진 또래 애착의 엄청난 폐해를 알게 된 후로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재정립했다.

 

결국 부모와의 애착이 잘 이루어진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람직한 또래를 만나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또래 관계가 모든 관계에 우선하도록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준비되지 않은 자녀를 또래 관계 속에 밀어넣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또래 관계 외의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배려받으면서 자아를 키워야 한다는 것. 다른 무엇보다 아이 자신이 타인의 시선과는 별개로 스스로를 존중하며 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등등. 깨닫게 된 사실이 무척이나 많다. 

 

 

자존감의 핵심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인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는 독립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다. 자존감 문제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할 때도 자기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때도 자신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이 비판할 때도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치 있는 자존감은 성숙의 열매다. 

 

실제로 건강한 자존감의 핵심은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생존 감각이다. 아이가 혼자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혼자 일어섰을 때, 혼자 무언가를 감당했을 때 우리는 아이 내부에 우뚝 솟은 자부심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존감의 진짜 쟁점은 자기 존재의 가치와 타당성에 대한 결론과 결부되어 있다. 진정한 자존감을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어른들과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관계에서만 성장하는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다. (중략)

 

진정한 자존감은, 나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할 수 있든 없든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321쪽 

 

 

결국 아이들에게는 또래관계에 끌려다니는 시간보다 혼자 있으며 자신만의 생각과 의미를 발전시키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면 견고한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한 단계씩 성숙해지며 자존감을 회복한 시기에는 늘 자신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혼자만의 방에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없이 깊어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 삶의 대부분을 주체적으로 살아보려 그토록 애쓰면서, 왜 아이의 삶에서는 친구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을까? 친구를 선택하고, 친구와 사귈 시기를 선택하고, 친구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고.... 이런 모든 것들은 아이 스스로가 결정할, 아이의 일이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가 가진 독특함을 유지하며 개성을 활짝 꽃피울 수 있도록 '자기만의 방'에서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늦었지만, 늦게라도 '또래'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 준 정말 고마운 책이다. 

 

 

육아의 비결은,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부모가 '어떤 존재인가'에 있다. 아이가 부모와의 접촉과 친밀감을 원하면 부모는 양육자로서, 위안자로서, 인도자로서, 모범으로서, 멘토로서, 혹은 코치로서의 권한을 갖게 된다.

 

부모와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홈 베이스이고, 실패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피난처이며,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떤 육아 기술도 이 애착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부모와 아이의 애착 관계는, 적어도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할 때까지는 지속되어야 한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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