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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고집스러운 기쁨

신문에 나오는 기사 중 몇 개씩 딸아이에게 읽어 보게 할 때가 있었다.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가 '싫다'는 무심한 답변을 들은 후로는 느낌을 굳이 묻지 않았다.

본인이 읽었으나 느낌이 없을 수도 있고, 때론 느꼈지만 혼자 간직하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오늘도 '그저 이런 칼럼이 있는데 읽어 볼래?' 묻기만 했다. 내가 읽고 나서 한참 생각하게 한 글이라서 딸아이도 읽어봤으면 해서였다.

 

 

'백영옥의 말과 글' <고집스러운 기쁨>

우리는 과감히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 쾌락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기쁨 없이는 안 된다. 즐거움 없이는,
이 세상이라는 무자비한 불구덩이에서 고집스럽게 기쁨을 받아들여야 한다.

제임스 길버트의 시 '변론 취지서'를 처음 읽었다.
시를 소개한 건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였는데 그녀는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에서 시에 등장하는 '고집스러운 기쁨'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젊을 때 피아노 연주자가 되려고 했는데 막 유명해지려는 때에 사고로 손가락을 하나 잃었다. 피아니스트라는 목표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는 돈은 아주 많지만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다정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간호사들에게 따뜻이 돌봄을 받았는데 생전 처음 누려 본 경험이었어.' 남자는 손가락 하나 없는 손을 들어 이렇게 덧붙였다. '(손가락을 잃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지!'"

자연스러운 기쁨과 다른 '고집스러운 기쁨'이란 이런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슬픔을 아주 작은 은총의 순간과 견주어 보고, 그래도 인간으로 사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 말이다.
젊은 나이에 쓰기 힘든 시가 있다. 길버트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도 이런 삶의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로 꿈을 잊고 기쁨을 잃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미국 여행에서 강단을 꿈꾸며 유학을 왔지만 버스에 선 남자를 보았다. 그는 강단 대신 관광버스에 서서 미국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유쾌한 강사(가이드)가 되어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에서도 아이돌이 되려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출연자가 적지 않다.

고집스러운 기쁨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라는 태도,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는 희망의 종류를 바꾸는 용기일지 모른다.
그럴 때, 삶의 또 다른 기쁨이 열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7/2019051703239.html]

 

 

아이가, 이 글을 읽으며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나더니 갑자기 자기 휴대폰을 뒤적뒤적한 다음 내게 문장 하나를 읽어 준다.

 

"현이야.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게 되어 있어. 닫히는 문만 바라보고 있으면, 열리는 문을 보지 못해." 언어는 순환한다. 내가 당신에게 해 준 말을 어느 날 지리산을 오르다 낯선 등산객에게서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하명희 <사랑의 온도>중에서

 

최근에 자신이 읽은 책 '사랑의 온도' 속에서 나온 글귀가 백영옥 작가의 칼럼을 읽으면서 기억났다는 것이다.

나도 몇 번이나 아이에게 '인생의 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엄마가 말했던 것은 떠올리지 못하고 책 속에서 본 문장에만 밑줄 긋고 감동받는 것을 보면..... 가끔씩 서운하긴 해도, 사람은 자기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움직여 자신의 머릿속에 넣은 지식과 지혜만을 더 선명히 기억하는 게 맞다.

하명희 작가의 말대로 언어는 순환한다. 누군가에게서, 어디로부터 날아 온 것인지 모를 언어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뿌리내린다. 그 말이, 그 언어들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떠랴.
어떤 글을 읽어도 그 속에서 자신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에 빨간 밑줄을 그을 수 있다면.
말하기 싫어한 게 언제였냐는 듯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 속 다른 문장을 넌지시 내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딸아, 너는 오늘도 느리게 느리게 한땀씩 한땀씩 자라고 있구나. 그러니 엄마인 나도 그렇게 조금씩 자랄게.

우리 '인생의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지 말고, '인생의 열린 문' 앞에서 함께 '고집스러운 기쁨'을 맞이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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