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저마다 다르다. 더욱이 그것은 단기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녹아서 사람의 마음과 몸에 스미는 것이다. 취향은 '영혼의 풍향계'이자 인간 그 자체다. 타인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은 한 개인을 알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취향을 존중하는 자세야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128쪽
이기주의 <한때 소중했던 것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남편과 딸아이를 보면서 그들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보던 나는 이 문장들을 접하며 수긍이 되었다.
그래, 맞다. 영혼의 바람이 이끄는 대로 관찰하다가 시선을 끄는 것들 앞에 주저앉는다. 그것들과 시간을 보내며 위로와 즐거움을 얻는다.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바로 그게 취향 아니겠는가. (갱년기 남편의 홈쇼핑 시청 취향, 공짜라면 뭐든 받아오는 아이의 취향 등등. 써놓고 보니 슬퍼지네..)
딸아이가 보는 책들을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수필류가 많다. 아이 덕분에 내가 새로 알게 된 작가도 꽤 있는데 김수현, 정문정, 하완, 백세희, 흔글, 이슬아..... 이기주도 아이 덕에 알게 되었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에 이어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딸과 함께 읽었다.
작가는 굉장히 섬세하고 단어 하나에 숨겨진 의미와 분위기까지 다 잡아내어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는 그런 것들에서 공감을 한 모양이다. 청소년기의 울퉁불퉁함과 날카로움을 매만져 주고 쓰다듬어 주는 글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이기주가 그거 썼어'? 할때, 딸아이는 '이기주 작가님이 그거 쓰셨어' 한다. 딸아, 너 그런 극존칭 뭐냐???? 엄마, 아빠에게 좀 써보렴..)
그런데 작가의 아픈 어머니는 아들에게 달리는 악플때문에 충격을 받으신 적이 있었나 보다. 궁금해서 인터넷 서점을 들어갔더니 별점 테러를 지속적으로 해놓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책을 내는 것은 특별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시대다. 마음먹으면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책이 흔한 시대이다. 독립출판도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까...
그런데 수필의 경우는 작가가 인생의 느낌을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쓰는 부담없는 글이다. 독자들이 자신의 취향과 맞는 작가를 선택해서 읽으면 되는 거다. 필수로 읽어야 하는 전문서적이나 교양서적이 아닌 거다.
철저히 독특한 자신만의 '취향'이 선택 기준이 되는 책이 수필들이다.그러니 독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현재의 감정이 어떻고, 어떤 위로나 격려를 받고 싶은지....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평상시에 조금 더 해두면 좋겠다.(아줌마가 뭐라고 조언질이야... 그러면 무섭다ㅜㅜ)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샀는데 돈 아까워 죽겠어요. 내 시간 돌려놔요'.... 이런 투정 대신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수필 작가를 찾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든 상황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문장 하나를 발견하면, 그 기쁨과 따뜻함으로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유안진, 이어령 선생들이 들려주는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겼던 나는, 수필의 힘을 믿는다. 이 시대의 수필 작가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 주려 한다는 그 진심을 믿는다. 그런 진심없이 하는 글쓰기라면 괴로워서라도 작가 본인이 지속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과 속칭 궁합이 잘 맞는 작가를 찾아서 그들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듣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노력이, 잘 안 맞는 작가의 책 밑에 악플 달고 별점 테러 다는 것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스스로에게도 도움되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기주 작가의 엄마도 아니고, 이모, 고모도 아니다. 그냥 생면부지, 모르는 아줌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별점 테러 보는 내내 기분이 씁쓸했다. 이기주 작가 어머니 편찮으시던데 모쪼록 충격받지 마시길 바란다. 그렇게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감성을 가진 아들 두셨으니 함께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책 내기 쉬운 시대일지라도 그 한 권 내기 위해 모든 작가가 고민하고 쓰고 지우며 지새웠을 시간들 앞에 뭉클해진다. 그저 딸아이와 나는 세상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장, 다시 생각하고 싶은 의미들을 부지런히 찾아내는 것으로 보답에 대신하려 한다.
눈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글쎄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살다 보면 눈앞이 눈물로 가려져야 비로소 보이는 고통과 슬픔이 있다. 눈동자에 눈물이 괼 때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실상이 있다. 그리고 어떤 눈물은 우리를 웅크리게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자라게 한다. 그런 눈물은 어떻게든 한 방향으로 사람을 길러내고 만다.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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