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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마음을 내어 주는 일

 

그동안 이런 저런 책들을 읽었지만 청소나 정리, 수납 관련 책들을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청소나 정리, 수납에 필요한 특별한 지식이 따로 있다고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청소는 바닥 쓸고 닦고, 정리는 어질러진 것들을 간추리고, 수납은 물건을 어딘가에 집어 넣어서 눈에 안 띄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살림이라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여기며 나는 어디에서도 보도 듣도 못한 요상한 방식으로 '나답게'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청소, 정리, 수납을 뭉뚱그린 살림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지금껏 살아 온 나는... 요사이 느끼는 점이 참 많다. 손 쉬워 보이는 일상적인 일들을 오래 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잘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살림을 잘 하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실력에 있는 게 아니라 정성에 있는 것이란 걸 배우고 있다. 나의 뼈아픈 실수는, 나의 살림에 마음을 내어 주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저 나이 먹는 것만큼 살림에 관한 실력이 늘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갈수록  내 살림은 엉망이 되어 갔다. 나의 삶이 지치고 힘들때 나는 가장 먼저 손쉽다고 생각한 살림부터 놓아 버렸다.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덜 밑지는 항목이었고 버려도 되는 카드처럼 생각되었던 거다. 살림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들이 많다고 착각하며 살았나 보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살림처럼 기본이 되는 것들이 흔들려 버리면 피폐해지고 쪼그라든 나의 삶과 내 몸뚱이는 어디에 눕혀야 되는가.. 살림이란 그런 거다. 나와 내 가족이 쉴 공간을 가꾸고 매만지면서 숨결을 불어넣는 일. 내 마음을 아주 많이 내어 주면서 신경써야 할 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펼치자 마자 나를 반긴 문구는 이렇다. 

정리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너무 정리가 하고 싶은 경우, 그것은 방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1쪽

그랬다. 내 눈에 어지러운 살림이 들어온 것은 내가 변하고 싶다고 느낀 이후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그냥 나의 주특기인 생각없이 사는 삶으로 일관되게 지내고 있었다. 살림 못한다고, 물건 많다고 스스로를 그닥 자책했던 적도 없었다. 그랬다면  물건들로 포화 상태를 이루며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 자신이 오랫동안 느끼던 패배감과 우울감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더이상 내가 나를 탓하거나, 내 주변을 탓하면서 나의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른바 각성이었다. 변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매뉴얼이나 누군가로부터의 도움도 없이 그저 아줌마의 동물적 직감으로 값싸고 오래된 것들을 주섬주섬 골라내어 조금씩 버렸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매번 하는 일상의 정리가 아니라 한번에 완벽하게 끝내는 축제의 정리이다. 44쪽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했다. 이 책은 한번에 싹 다 정리하는 걸 추천한다. 일본의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는 고객의 집에 방문해서 45리터 쓰레기 봉투로 100개 분량의 물건을 함께 버려주는 사람이다. 자그마치 100개다. 그 안에 들어갈 물건들을 생각해 보라. 정말 사람 빼고는 다 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버리지 않으면 절대 못 채울 어마어마한 양이다.

무릇 환골탈태적 각성이란 그런 것이다. 곰이 마늘먹고 사람으로 변해야 그게 '각성'인 거지, 뜬금없이 옆에서 같이 마늘 까먹다가 도망친 호랑이로 변하는 게 '각성'일리 없잖은가. 그랬다면 차라리 애초의 곰으로 살고 말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각성의 단계를 '사람' 수준으로 맞추어 곤도 마리에님의 말씀처럼 한바탕 축제의 정리를 할지 여부를 놓고 말이다. 그러려면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브레이크를 거는 자가 있으니, 남편이다.

"아니 돈 주고 산 걸 아깝게 왜 버려?" " 책을 버리는 사람도 있어?" "다 버릴 거면 왜 샀어?" "이러다가 나도 버리려는 거 아냐?" 등등. 갱년기에 접어든 남성은 미련도 많고 감수성도 풍부하다. 초롱초롱 촉촉한 눈빛 대신 초라하고 메마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눈빛엔 이런 무언의 의미도 들어 있다. '이 여편네가....내가 벌어다 준 돈 이렇게 막 쓰기야????'   남편 말을 들으면 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곰으로 남아야 하나?

미안하다. 살림 못하고. 물건만 사들여서.... 그런데 자꾸 똑같은 얘기 반복이라 더 미안한데.... 무릇 각성이란 아무때나 되는 게 아니다. 삶의 바닥을 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버둥대며 다시 올라오고자 할때 비로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바로 그 상태이고 그러려면 내 삶에서 어느 정도의 비움은 필수인 것이다. 그러니 정리를 해야 하는 거다. 

애당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정리를 할까? 결국 방이든 물건이든 자신이 행복 해지기 위해서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리는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물건을 버릴지, 남길지를 구분할 때도 '물건을 갖고 있어서 행복한가' 즉 '갖고 있어서 마음이 설레는가'를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 58쪽

정리를 해서 물건을 줄이면 생활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중요시 하는지 가치관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어쨌든 내 생각은 효율적인 수납을 추구하기보다는 설레는 물건을 골라서 자신의 기준으로 생활을 즐기는 것이 정리의 진수가 아닐까 한다. 아직 자신이 갖고 있어야 하는 물건의 적정량을 깨닫는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물건을 계속해서 더 줄여도 된다. 162쪽

책에서 배우면 바로 바로 실행하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다. 50년 인생에서 덜어낼 것들을 쓰레기 봉투 100개에 차곡차곡 담는 일을 곤도 마리에처럼 한번에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살림을 돌아보는 법을 배운 이상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손놓고 지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어쨌든 지금도 여러가지 면에서 진화하려 애쓰는 중이다. (여태 안하고 뭐했나 몰라ㅜㅜ) 비록 아직은 '사람'으로의 각성이 덜 되었지만 '곰'으로 남는 것도 거부할 것이다. 사람으로 진화중인 곰, 유행하는 말로 나는 발달 단계가 '곰사람'인 상태다.

그러니 나와 관련된 모든 일에 '사람'처럼 마음을 내어 줄 것이다. 내 마음 한 조각 들어가면 윤이 나고 반짝일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 후반전. 늦어도 늦은 게 아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앞으로 내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일만 남았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드는 김에 욕실의 오래된 물건을 조금 비웠다. 그랬더니 공간이 보이고 나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