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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학교 밖 모험생이 살아남는 시대가 온다

'학력파괴자들' 이름부터 과격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보고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공부하며 다른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로 반짝였다.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아예 진학을 하지 않을 수도, 대학 이외의 다른 곳에서 배움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고. 그렇게 교육에 관해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경우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추진력과 몰입으로 성과를 내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방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사람들의 능력을 폄하하며 중도 탈락자, 부적응자, 실패자로 낙인찍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학교 교육이 과연 학생들을 얼마만큼이나 창의적인 인재로 만드는데 기여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받고 있는 교육이 바로 프러시아 교육제도로 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이 프러시아 교육제도의 목적은 개인의 인간성과 창의성을 말살하여 사람을 쉽게 부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주입식 교육과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개개인은 열등감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꿈조차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해서 낙오자로 만들어 버리는 학교 교육체제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앎에도 불구하고 그런 학교를 떠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여기는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될 듯 하다.

 

예일대 교수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저서 <공부의 배신>을 통해 명문대생들은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고, 또 잘하는 것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학교육은 그저 '똑똑한 양떼'를 키워 모든 학생들이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가도록 만들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이렇게 학습된 엘리트 학생들의 내면에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힘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좌절, 공허함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경영 구루인 세스 고딘은 저서 <린치핀>에서 '우리가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학교와 시스템에 의해 세뇌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와 학교는 '나'라는 개성체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전체를 위해 일할, 말 잘 듣는 순응자만 원할 뿐이다. 

 

또 그는 "아이들은 시험과  성적, 입시를 무기로 순응과 공포를 주입시키는 학교의 세뇌를 거치면서 결국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므로 학교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고 말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버트런트 러셀은 "지적모험심이 나이가 들수록 희귀해지는 까닭은 모든 교육과정이 그것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낸 결과를 배우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누구나 자신들의 인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와 다르면, 우리와 다르면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태도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 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특목고, 명문대, 스펙, 대기업, 전문직을 향한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굴레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일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요사키는 이러한 우리의 인생을 '쥐 경주' 삶이라고 표현했다.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회사에 청춘을 바치며, 쥐꼬리 같은 돈으로 결혼자금과 집을 마련하고 자녀양육비를 대며, 평생을 대출과 빚에 얹혀살고서도 또다시 자녀에게 똑같은 삶을 살라고 하는 쳇바퀴 인생. 듣고보니 딱 '쥐 경주' 같은 인생이다.

 

그는 "좋은 학교에 가는 이유는 안정된 고임금 일자리를 '얻기' 위함이지 '창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 학생은 조직의 일원이 되고, 주도적으로 인생과 사업을 이끌어갈 생각을 하기는커녕 평생 '일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삶을 이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사람은 누구나 천재다. 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면 물고기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 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든이에게는 자신만의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학교 성적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게 될 경우 이 사회는 무능력자들의 집합소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학교 성적의 높고 낮음을 아예 배제해 버린채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들에게서 무수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일례가 '초콜릿계의 저스틴 비버'로 불리우는 루이스 바넷이다. 그는 난독증, 학습장애로 11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해서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초콜릿 회사 최연소 대표가 되었다.

 

루이스 바넷은 "만일 학교에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사업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교육은 취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교육이 기업가 정신을 가르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전통적인 학습의 길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벗어나야만 했어요."

 

" 학습장애는 '장애'가 아닌 '능력'입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거나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수월하게 다른 무언가를 하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대한 결핍이 있으면, 그 빈자리가 또 다른 능력으로 채워지는 것이 삶의 균형이에요."  137쪽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주입식 학교 교육은 오늘도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을 목표로 학생들을 몰아세운다.

 

2007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방문 당시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등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로부터 12년이나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학생들은 학업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OECD국가 중 삶의 만족도 면에서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미래에는 한 사람이 평생 10-14종의 직업을 갖고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직업의 세계가 넓어짐은 물론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기 위한 학습이 끝없이, 평생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10대와 20대에 모든 즐거움을 배제한채 오로지 공부만 하면서 '쥐 경주'에 뛰어드는 삶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평생에 거쳐 천천히 학습을 이어간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다면 학교 밖의 세상이 배움의 장소로 더 적합한 곳일 수 있다. 그러니 작가가 말한대로 학교 안 '모범생'으로만 머물지 말고 학교 밖 '모험생'의 삶도 꿈꿔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