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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시집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그곳의 아이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박준 시인의 두번 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있는 시 '장마'이다.

태백에서 박준 시인이 보내는 두 통의 편지 중 한통은 구겨버린다.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를 썼던 그 편지.

갱도에 갇힌 광부들은 수맥에 의해 익사했다고 썼던 그 편지는 없앤다.

과거의 아픔을 굳이 되새기지 않고

현실을 견디다 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말처럼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읽힌다. 

하염없는 장마를 같이 보고 견뎌내 줄.

너와 내가 있다는 건

살아갈 힘이다. 

 

 

<단비>

올해 두 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아 이곳 저곳으로 입양 보낼 때마다 

시인은 개의 표정을 늘상 살폈나보다. 

변화라고는 없던 그 개가 

마지막 새끼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참고 억눌렀던 구슬픈 모성을 드러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안쓰럽게 바라 보는 시인이나,

새벽부터 개를 데리고 산책나가 함께 우는 시인의 아버지나

그저 한 편의

시詩다.

 

 

 

박준의 첫번째 산문집 <운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도 시인의 이런 담백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면모가 곳곳에 드러난다. 

그래서 박준의 시집과 산문집을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나 보다. 특히 산문집 속 <취향의 탄생>을 보면 시인의 성격이 단적으로 나온다.

여행 갔던 곳 또 가기. 그것을 본인은 '병' 또는 '소심한 마음'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의 취향을 '소중함' 또는 '되새기고픈 마음'이라 부르고 싶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여린 감성의 '그'를 보는 것이 기쁘다.

 

 

<취향의 탄생>
봄이 오면 나는 병을 앓을 것이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통영에 가려는 병. 따지고 보면 병도 내 삶의 취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꼭 통영이 아니더라도 나는 한번 여행을 간 곳이라면 다시 그곳을 찾는 버릇이 있다. 아무리 실망했던 여행지라도 그렇다.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을 떠올려도 좋겠고 여전히 소심한 마음이 만들어낸 걸음이라 해도 좋겠다.
내가 다시 찾은 그 여행지에서 내내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안도감이다. 이 안도감이란 왠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불안해했던 처음 여행 때의 생각을 보란 듯이 부정하는 것에서 온다. 또한 이제 두번째이니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도 그리 아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도 온다. 물론 이 ‘여행’이라는 말을 지우고 그 자리에 ‘만남’이나 ‘연애’라는 말을 넣어도 뜻은 통한다.  

 

아무리 실망했던 여행지라도 꼭 다시 찾아 '두번째'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이젠 정말 마지막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천상 시인이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다 보아내려고 서두르는가.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느끼기 보다는 허겁지겁 주워 담고 돌아서는 나에게

누군가 '다음에 다시 오면 되지.....' 라고 말해준다면

그 순간, 지천에 널린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박준의 걸음걸이는 늘 여유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