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7일 전쟁'은 '우리들 시리즈'의 첫 권으로 일본내에서 1985년 발행된 이래 2011년까지 15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청소년 소설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의 경우는 사계절, 창비, 비룡소, 문학동네 등에서 본격 출간된 것이 거의 2000년 들어서다. 2-30년 후의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도 베스트셀러가 되면 1000만 부 누적 판매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많이 팔리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오래도록 읽히는 것일텐데... <우리들의 7일 전쟁>은 거의 35년 가까이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소년 소설의 정수라고 꼽히는 로이스 로리의 <기억전달자>나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를 좋아하는 나는 그런 류의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우리들의 7일 전쟁>을 펼쳤다.
소다 오사무가 지은 <우리들의 7일 전쟁>은 폭력적인 교사, 공부만을 강요하는 부모, 비리를 저지르는 사회지도층 등 기성세대에게 반기를 드는 청소년들의 좌충우돌 전쟁 모험담이다.
작가는 기성세대의 획일화된 명령에 불복하려는 청소년들에게 각자의 환경을 전복시킴으로써 돌파구를 찾게 한다. 환경의 전복은 다름아닌 '가출'이다. 중학교 1학년 열네 살 아이들이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도대체 몇명이나 집을 나갔을까?
여름방학식날 한반의 절반에 해당되는 20여명의 남학생들이 모두 연락두절이 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단 유괴를 당한 게 아닐까 초조해 하고 있는데, 그 사이 이 발칙한 남자 중학생들은 폐업한 공장 사무실에 잠입하여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든다. 이름하여 해방구. 해방구는 일본에서 사회 변혁을 외치던 전공투(학생운동) 세대들이 대학내의 강당과 강의실등을 점거하며 자신들의 저항의 근거지로 삼았던 것을 일컫는다.
주인공 도루는 전공투 세대였던 부모로부터 해방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만의 해방구를 만들 결심을 하며 또 다른 주인공 에이지에게 같이 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제안과 수락은 꼬리를 물고 남자 아이들 전체에게 퍼졌고, 여자아이들의 암묵적 승인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공부와 억압, 명령에서 벗어나서 자신들만의 아지트, 해방구를 만들고 방송까지 하는 여유를 보인다. 부모들은 걱정하지만 아지트 안에 들어 있는 아이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자발적 고립을 택한 아이들은 그 속에서 비밀리에 준비해 둔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때우고 무더위와 싸우지만 어느 누구도 중도 탈락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한마음이 된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작품의 판타지성이다.
겉모습은 생활밀착형 모험 소설이다. 그러나 그 많은 아이들이 하나의 목표인 '자유와 억압에 대한 투쟁'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도 배신자나 비관론자 하나 나오지 않는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판타지다.
작가 소다 오사무는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도 자유의지를 꺾지 않는 아이들에게 대동단결이라는 환상성을 심어줌으로써 청소년끼리의 단단한 유대감을 마련해 준다. '어른들한테 너무 많이 실망했지? 그럴때는 너희 스스로 기댈 언덕이 되어주면 돼. '라고 작품속에 안전장치를 해 준 것 같다.
이 책이 거의 35년 전에 쓰인 것인데 당시의 입시 경쟁이나 폭력적인 교육 환경을 지금 읽어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제자리걸음을 걷기 때문 아닐까 싶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때 깨어있는 지성으로 사회 변혁을 외쳤던 전공투 세대들이 나이들어 결혼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경쟁적 입시 공부와 성공만을 강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386세대들이 중년이 되어 자식들의 사교육에 월급의 절반을 쏟아부으며 명문대 진학을 위해 목매는 현실과 흡사하다.
<우리들의 7일 전쟁> 속 아이들은 강압적인 어른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비리를 캐내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하물며 부모의 부도덕하거나 잘못된 행위를 비난하는 것에도 앞장선다.
해방구에 들어오지 못하고 유괴가 되었던 나오키를 유괴범 손에서 구출해 낸 것도 경찰들이 아닌 해방구 아이들이었다. 또한 유괴범이 사채빚 독촉에 시달려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임을 알게 된 나오키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몸값을 빼돌려 유괴범에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새 삶을 선물한다. 불법낙태시술로 돈을 버는 산부인과 아버지의 돈은 어차피 불륜에 쓰일 것이기에 선량한 유괴범을 돕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렇듯 어른들은 감히 흉내내거나 시도할 수 없는 결정과 행동도 추진해 내는 힘이 있다. 그런 힘은 어떤 억압과 제재, 간섭과 지시가 없을 때 폭발적으로 드러나며 그들 삶을 추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해방구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자 어른들은 아이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본 부모가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 부모들은 대학생때 전공투 활동을 맹렬히 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을 봐. 이제 권력에 대항할 에너지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어. 고등학생은 또 어때? 고등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예비 학교로 전락하고 있잖아. 중학생도 3학년이 되면 교사가 시키는 대로 해. 소란을 피우는 건 몇몇 불량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뿐이야.
그런데 이런 애들은 또 비행이란 딱지를 붙여 격리해 버려. 결국 우리 뒤를 이을 수 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 거지. 어쩌면 저 애들이 우리 뒤를 이을 녀석들인지도 몰라. 저 애들을 움직이는 건 사상이 아냐. 생존 본능이지.
생물이란 미래의 위험을 예지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 하거든. 그게 없는 생물은 도태되어 멸망해 버리지. 저 애들도 이대로 가면 앞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게 분명해." 89쪽.
그러나 다른쪽의 어른들은 해방구에 들어간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하며 그럴수록 엄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갈수록 교육이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잘 안되는 이유는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보통 동물을 어떻게 길들이지? 개나 말을 조련하듯이 채찍으로 길들이면 반드시 잘되게 되어 있어. 이게 비법이야. 자네들도 머릿속에 잘 넣어 두게."
"이런 교육 방식이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쇠는 뜨거울 때 두드리는 법입니다." 236쪽
아이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려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멋지게 외친다.
"그 문제와 이건 다르다. 너희는 아직 어린애란 말이다."
"어린애든 어른이든 나쁜 건 나쁜 거예요. 안 그래요?"
"그건 그렇지만....."
"왜 아이들만 진실하게 살아야 하죠? 이유를 말해 보시라고요. 이유를." 334쪽
책 속의 아이들은 모든 어른을 다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노숙자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바깥 세상의 폭력적인 어른들을 조롱하고, 비리를 밝혀내며 할 일을 한다.
아이들은 한 순간도 심각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그저 신나게 놀고 즐기며 자신들의 생각에 맞게 행동했을 뿐인데 결과는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경찰들이 해방구 아이들을 강제 진압 해산하러 오는 순간.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해방구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지하 맨홀을 거쳐 세상으로 당당히 나온다. 아이들 스스로가 전쟁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알고 행동한 것이다.
7일간,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전하고 싸움을 멈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세상 불의를 보게 되면 70일도, 700일도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싸워 본 자들은 더 이상 싸움이 두렵지 않다. 싸우지 않고 답보 상태의 불의한 현실에 발 담그고 있는 것이 더 두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7일 전쟁> 속 아이들이 내게 건넨 위로를 기억하려 한다. 그래서 나의 그 지난하고 피말렸던 싸움을- 비록 비합리적 결과를 도출한 싸움일지라도-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돌을 던져 봤기에 이젠 안다.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을 견디는 것보다 울부짖고 깨뜨려서라도 '나'를 지키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깨지고 다치고 넘어지면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더 좋은 어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나도 좋은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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