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는데 정치 신인인 그녀가 던진 당찬 말이 인상적이다.
"거악(巨惡)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슬로바키아는 정확히 유럽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슬로바키아 국민은 정치에 문외한이었던 이 젊은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는지
궁금해서 이전 기사들을 찾아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주사나 카푸토바(45). 슬로바키아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변호사였다.
카푸토바는 14년간 수도 브라티슬라바 인근의 고향 마을 페지노크에서 불법 폐기물 매립 문제를 두고 투쟁하여 왔다.
이후 대법원이 매립 불허 판결을 내리면서 2016년 환경 분야의 노벨상인 골드만환경상을 받기도 했다.
슬로바키아는 유럽의 내륙에 위치해 있고 1000여년 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한다.
1918년 체코와 합병해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다가 이후 민족 간 갈등으로 1993년 1월 1일 체코와 분리해 독립했다.
분리 과정에서 전쟁이나 유혈사태 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헤어져 '벨벳이혼'이라고 불려졌는데
이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코는 대부분이 평지이고 프라하가 관광지로 유명한데 비해
슬로바키아는 산맥에 걸쳐 있어 국토의 대부분이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한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城) 중 하나로 꼽히는 슬로바키아 보이니체성.
슬로바키아에는 성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인구당 성(城)의 개수가 세계 최대일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슬로바키아에서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환경운동가 주사나 카푸토바는
어째서 대통령이 되어 거악과 싸우기로 결심했을까?.
그녀의 결심에는 슬로바키아 내에서 일어났던 기자 암살 사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지난해 2월 탐사보도 전문 기자 잔 쿠치악은 10년째 집권 중이던 피코 전 총리의 측근들이
이탈리아 마피아와 결탁해 EU의 농업 보조금을 빼돌린 사건 등 정권 비리를 취재 중이었다.
마피아와 연루된 의혹을 받는 사람 중에는 검찰 2인자인 차장검사 등 정치인들 상당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잔 쿠치악은 이탈리아 3대 마피아 조직인 은드란게타와 슬로바키아 정치권의 공생 관계를 추적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취재를 계속하다가 결국 지난해 2월 25일 총에 맞아 숨지고 만다.
당시 잔 쿠치악은 28세로 결혼을 3개월 앞둔 시점이었고 자택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살해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국제 언론 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지난해 언론인 43명이 순직했는데 그 중 27명(62%)이 암살당했다고 한다.
암살당한 기자의 수가 사고사한 기자 수(16명)를 앞섰다.
과거에는 언론인들이 종군 기자로 파견되거나 오지 취재를 갔다가 사고사를 당하는 경우가 암살보다 더 많았으나
최근에는 분쟁 지역뿐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에서도 기자 암살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살해당한 기자들은 대부분 잔 쿠치악처럼 부패를 밝혀내는 탐사보도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들이었다.
AP통신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가치를 대변하는 언론인들의 피살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잔 쿠치악의 죽음으로 인한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쿠치악의 동료 기자들은 그의 미완성 기사를 그대로 보도했고 분노한 국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쿠치악이 숨지고 보름 뒤, 소련에 민주화를 요구하던 1989년 이후 최대 규모인 5만명이 브라티슬라바에 운집해 시위를 벌였다.
결국 피코 총리는 쿠치악이 숨진 지 19일 만에 사퇴했다.
검찰은 작년 9월 용의자 8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피코 전 총리 측근들과 가까운 마리안 코치네르라는 기업인이
5만유로(약 6400만원)를 사례금으로 건네고 2만유로(약 2550만원)의 빚을 대신 갚아주자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비리를 파헤치던 언론인이 '8000만원'에 청부살인된 것으로 밝혀지자 민심은 더욱 들끓었다.
특히 검찰 2인자인 대검 차장이 쿠치악 살해를 사주한 코치네르와 문자 메시지 수백 건을 주고받은 사이라는 점이 탄로 나
대선 결선투표 바로 전날인 지난 29일 사퇴하기도 했다.
피코 전 총리가 내세운 여당 후보는 현직 EU(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거물 정치인 마로스 세프쇼비치였다.
지난 16일 1차 투표에서 카푸토바는 40.6%의 득표율로 세프쇼비치(18.7% 득표)를 꺾었고,
결선투표에서도 세프쇼비치를 58%대42%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실권은 총리에게 있고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내각 구성 승인권과 헌법재판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등 중요한 견제 권한을 갖고 있어서
'악의 축'으로 지목되는 로베르토 피코 전 총리가 이끄는 여당인 사회민주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죽음의 위협도 불사하고 정치인들과 마피아간의 부정부패를 끈질기게 조사하던 한 젊은 언론인의 죽음이
슬로바키아 전 국민의 정치 변화에 대한 염원에 불을 당겼다.
그리고 환경운동가 카푸토바는 거악(巨惡)과 싸우기로 마음먹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국민들의 바람대로 슬로바키아의 부정부패한 정치가 새롭게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신껏 취재하고 보도한 참 언론인 잔 쿠치악의 죽음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슬로바키아에 전혀 관심없었던 나도 기사 찾아보다가 마음이 울컥해졌다.
모두가 원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이라고만 하며 저만치 밀쳐 놓지는 않았으면 한다.
뜨겁게 바라고 행동하다보면 이루어 질 수도 있는 것이어야말로
진짜 꿈.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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