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전 쯤 처음으로 새아파트에 이사를 간 적이 있었다.
아파트는 깔끔했고 구조도 좋았고 마음에 쏙 들었다.
이런 아파트라면 평생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윗집에서 날마다 아이들이 쇠로 된 식탁의자(그 당시 주물 식탁과 의자가 유행했었다)를 끌고 다녔고
장난감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고 쿵쿵 뛰는 것은 물론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껍데기와 돌맹이들을 욕실 바닥에 던져대며 시끄럽게 놀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무차별적으로 내는 소음에 견디다 못해 인터폰을 한번 했고,
그 후에 직접 방문을했었다.
나중에는 비싼 케잌까지 사다 바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음은 줄어들지 않았고오히려 적반하장
'까다로운 아랫집 인간' 취급을 받으며 봉변을 당했다.
내 나이 또래의 그녀는 당당하다 못해 거칠었으며 상식 이하로 무례했다.
당시 나는 아이가 없을 때였는데...
그렇게 까다로우니 애도 없지....
이런 소리도 들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날마다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빠졌고
불면증에 잠을 이룰 수 없어서
결국 예쁘고 깔끔했지만 지옥같은 집을 도망쳐 나왔다.
그런 경험때문인지 소음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소음의 크기도 소리와 마찬가지로 데시벨(㏈)이라는 단위를 쓴다고 한다.
사람이 숨을 쉴때 10데시벨, 숲 속에서 20데시벨, 속삭임 30데시벨,
냉장고 40데시벨까지가 조용한 소리로 분류가 되는데...
10데시벨씩 커질 때마다 소리의 세기는 10배씩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40데시벨의 소리는 20데시벨보다 20배 큰 소리가 아니라
10곱하기10= 100,
즉 100배나 더 큰 소리라는 것이다.
소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10 데시벨 커졌다고 '에게, 겨우?' 이렇게 우습게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수업중의 교실이 50데시벨, 붐비는 도로가 70데시벨이라고 하니
그 둘 사이의 소음의 차이도 100배라는 것이다.
수업중 소음의 100배가 바로 도로위의 차량들이 내는 경적소리와 운행하면서 들리는 소음이다.
그러니...
나와 내 가족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누군가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소음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일상의 고요하고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남을 괴롭히면서까지 얻어지는 나의 즐거움이란 것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일까?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살 바비인형 -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Yon can be anything) (0) | 2019.03.17 |
---|---|
두꺼비는 왜 황소개구리를 죽였을까? (0) | 2019.03.16 |
가장 빨리 노화하는 기관은 '눈' (0) | 2019.03.14 |
복고를 넘어 뉴트로- 부뚜막 같은 휠라 운동화의 굽을 보라 (0) | 2019.03.14 |
위험한 풍선도 있다 (0) | 201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