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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복고를 넘어 뉴트로- 부뚜막 같은 휠라 운동화의 굽을 보라

엊그제 아이 생일이라서 저녁을 먹을 겸 외출한 김에 백화점까지 들르게 되었다.

요사이 매출이 떨어져서 백화점들마다 자구책을 강구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간 백화점은 예외인 것 같았다. 

손님들이 많았다. 

그 이유가 뭘까 이리저리 살펴 보았더니 중저가의 물건들과 예상 외의 파격 상품들이 꽤 있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같았다.

NC백화점이었는데, 혹자는 그게 무슨 백화점이야 할지 모르겠다. 쩝.

백화점하면 롯데, 현대, 신세계지.. 뉴코아가 백화점 축에나 껴? 라며...

어쨌든 보통의 백화점들이 고급화를 추구할 때 NC백화점은 중저가, 문턱 낮은 백화점, 

혹은 마트 마실 나가듯 

구경 갈 수 있는 백화점(너무한가??)전략으로 손님을 끄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아이는 철들기 전에는 돈을 못 써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화장품을 사 모으며 탑을 쌓더니

이제는 돈 한푼을 안쓰기로 작정한듯 구두쇠로 돌변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운동화 하나를 사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신어본 운동화가 휠라였다.





정말이지.... 깜딱 깜딱 놀랐다.

운동화가 탱크같았다.

진짜 저걸로 머리를 맞는다면 머리에 금이 갈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조절만 잘 해서 단번에 내리치면 호두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운동화를 신은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야, 부뚜막 위에 올라선 거 같다."

부뚜막이란 옛날 씽크대? 다시 말하면 아궁이 위에다가 솥을 걸어 놓는 그 주변을 말한다.

옛날 드라마 보면 어머니들이 쭈그려 앉아서 아궁이 속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이려고 나뭇가지를 마구 쑤셔대던 장면이 있지 않은가. 

흙과 돌로 쌓은 그 곳을 말한다.

내 아이가 세대차 느끼게 부뚜막을 몰라서 내가 설명해 주었다.


왜 부뚜막이라는 말이 나왔냐 하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 나의 아버지는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들을 볼 때마다

"저러다가 코 깨지지. 부뚜막에서 내려 오라 그래라."  그러셨다. 

그 정도로 높고 위험해서 아슬아슬해 보인다는 뜻이었는데...

나이 먹고 나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터져 나왔다.

이래서 조기교육이 무서운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운동화가 구두도 아닌데... 굽이 어림잡아 5-6센티는 되어 보였다.

키높이 운동화들 대부분이 신발 안쪽에 높은 깔창을 깔아서 눈속임을 하는데 비해.

휠라 운동화는 대놓고 바깥 굽을 천정부지로 키워놓았다.

이게 바로... 복고(레트로)와 결합한 새로움이라는 뜻의 "뉴트로"라는 것이다. 

요즘 트랜드가 바로 "뉴트로"라는데.

예전 프로스펙스, 휠라 등의 운동화가 "레트로" 열풍과 맞아 떨어지면서

이런 식의 디자인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Z세대라고 불리우는 10대와 20대는 세련되고 화려한 제품들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어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옛날의 제품과 생활 방식들을 훨씬 새롭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복고라는 것이 기성세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Z세대의 감성을 여지없이 두드리며 그들 속으로 파고드니...

새로운 복고, 뉴트로는 당분간 지속될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부뚜막에서 조용히 내려오며 뉴트로를 거부했다.

뉴트로가 싫어서가 아니라, 구두쇠 기질이 뿜뿜해서라는 걸 알았지만 강권하지는 않았다.

선택할 자유를 주며 키운 것처럼

거절하고 거부할 자유를 준 것 일뿐.

나는 결코 돈 굳었다는 얕은 생각을 하는 그런 엄마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