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생각

다만 다정하기 위해 혹독한 것일 뿐

 
돈은, 수중에 있든 앞으로 들어올 것이든 간에 충격 완화 작용을 한다. 

행동을 느리게 하고, 나아가 사람을 미련하게 만든다. 

돈이 있으면 기회가 와도 재빨리 붙잡을 필요가 없으니, 시간을 때우면서 다른 건 뭐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도 없으니 발전을 기대할 수도 없다. 

돈이 있으면 우회할 수도 있고, 일탈을 할수도 있다. 

직업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고 좀더 좋아 보이는 일을 하거나, 한동안 또는 아예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기회가많다는 것은 기회가 없다는 것과도 같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안 하게 될 것이다. 

문이 전부 열려 있다면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평생 빈둥거리며 아무 일도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별다른 성취감도 없을 것이고, 인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조 쿠더트 <우리 고양이하고 인사하실래요?>



 




어렸을 때는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책을 읽던 아이가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책 대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붙잡고 산다. 
사내녀석들은 게임하느라 정신 없다던데...
딸아이는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다. 
필독서라든지, 문제집을 검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날마다...
옷이나 화장품 기타 등등 물건 따위를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한다. 

가격비교사이트에서 한 푼이라도 저렴한 걸
구매하려는 주부의 마인드를 가졌나 하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까?

아니면...
대체 누가
가격 비교 하면서 몇 백원 더 싼 사이트
찾아보는 한심한짓 하랬어 하고...
눈을 흘기고 머리를 쥐어박아 줘야 할까?

물건은 도처에서 넘쳐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새롭고 화려하고 성능 좋은 제품에 현혹되어
같은 종류인지 알면서도 
자제력없이 비슷한 것들을 사재기 한다. 

아이에게 처음부터 돈을 왜 주었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처음에는 한 두개 사주던 물건들.
나중에는 사주지 않자,
아이는 친척 어른들한테 받은 돈을 꺼내서
이것저것 사려고 시도한다. 
그러면 또 나는 마음이 약해져
"이거 꼭 필요한 거야?"
하고 별 필요도 없는 말을 다짐처럼 묻는다. 
이미 내 마음은 아이에게 물건을 사주겠다고 작정한 거다.
다만 그 마음을 조금 더디게 들켜서
아이에게서 내가 얻고자 하는 계획, 맹세들을 받아내는 것에서
거래를 매듭짓고자 했다. 

그러나 
물건을 사주고도
아이는 계획이나 맹세를 지키지 않았기에.
어느 때부터 나는 지갑을 닫아 걸었다.

그리고
심각하게 얘기해 주었다.

네가 스무살 성인이 되면...
네 부모인 우리는 100세 시대를 대비해 노후대책에 골몰해야 한다.
그때부터 네 용돈은 알바해서 벌어써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네가 필요도 없는 화장품을 지금은 사모을지 몰라도....
몇년 뒤부터는 그 화장품 가게에서 하루 종일 서서
시간당 7530원씩을 받으며 일을 해야 할 거다. 
맥도날드에서 화장실 청소를 기본으로 
바닥 닦기. 테이블 정리, 주문 받기에 소고기 패티 굽기까지
네 시간과 품을 팔아 일한 대가로 받는 급여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너의 수중에 있는 돈을
절대적으로 아끼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네 소비패턴은 너를 아주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네가 돈 쓰는 법 대신
돈 버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돈 없이도 잘 사는 법을 깨닫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네 부모인 우리는 미안하게도....
네게
돈을 남겨줄 정도로
돈이 많지도 않을 듯 하고
명이 짧지도 않을 예정인 것 같다. 

시간 날때마다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확실히 씀씀이가 줄더니...
이제 돈을 거의 안쓴다. 
검색하면서 구경을 할 지언정...
자기 주머니, 
내 주머니 헐어서 물건 구입은 안한다.

때는 이때다. 
돈은 안쓰는 게 최고지.
그보다 더 최고는....
버는 거지.

"너, 
이 기회에 돈 좀 벌어보지 않으련?"

"어떻게?"

"책 한권 읽을 때마다 
엄마가 천원씩 줄게."

"됐어."


헉.
단칼에 거절이다. 
내 자식은 철 들려면 아직 멀은 걸까?
아니면 책 좀 읽히려는 내 얄팍한 마음이 들킨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렇다면.....
책 한권 독서에 천 원 포상금이 작은 돈이라는 건가?
자기 좋으라고 읽는 책에
권당 오천원, 만원을 매겨 줄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햄릿처럼
'다만 다정하기 위해 혹독한 것일 뿐'인 행동을 하는 거다.

딸아...
네 손으로
네 힘으로 
돈을 벌어라.
책도 읽고
돈도 벌어서
네 대학입학금은 스스로 마련해 보려므나.

5개년 계획 정도면
얼추 입학금 정도는 될 듯도 한데....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관(觀)하라  (0) 2018.01.29
딸기에게 예의를 묻다  (0) 2018.01.28
솔직히 인재가 필요했던 게 아니잖아?  (0) 2018.01.26
타인의 자비에 기대지 않기  (0) 2018.01.25
슬픔을 가지치기 한다.  (0) 20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