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생각

울타리 너머, 세상 밖으로

자식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얼마전 위치추적어플 하나를 나와 딸아이 폰에 동시에 다운받았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기에 그런 종류의 어플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 

이것저것 다운받다가 뭔가 복잡하고 머리가 아파서 다 삭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했다. 

앱의 이름은 울타리.

나와 딸아이가 그룹으로 연결되면...

서로의 폰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단다.

한달간은 무료로 체험도 가능하여 바로 실행해 보았다.


딸아이 혼자서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전혀 가보지 않던 곳도 가야하는 일정상

때때마다 전화와 문자로 아이의 위치를 묻고 확인하며 안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일상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위치추적 어플로  

조용히 아이의 현재 위치를 감지해 내는 것이 

아이를 방해하지 않고, 나 역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다.


시스템이 완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 동안은 위치의 정확도가 떨어졌고,

시간대별 경유지 간의 갭도 발생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후의 상황 안내는 비교적 신빙성이 있는 듯하여

일단은 사용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크면...

당연히 내 품을 떠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내가 쳐줄 수 있는 울타리는 딱 여기까지이다.

서로의 동의하에 위치추적어플 하나 깔아서....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정도.


세상 밖으로 향하는 너의 등을 마구 밀어서 더 빨리 나가라고 채근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네 속도에 맞게 세상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 속도가 너무 느려 조급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나의 문제였지... 너의 문제는 아니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모두의 첫 발걸음은 원래 더디고 느린 법이니까.

이제 너는 나의 울타리 너머, 

너의 세상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다.


당연히...

힘들고, 싫고, 속상하고, 귀찮고, 짜증나는 일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게 세상 이치이고.

너는 이미 그 안에 있다.


나는

날마다

너의 안전을 기도하며 너의 성장을 지켜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