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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내 언니, 태어나 만난 첫 번째 친구

 

 

토요일 독서모임을 간 사이 서울에서 엄마를 모시고 작은언니 내외가 집에 들렀나 봐요. 송도의 지인 결혼식에 오려고 했는데 서두르는 바람에 너무 일찍 도착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아침 일찍부터 독서모임에서 주최한 저자 특강을 듣고 있었지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까지 합세해서 결혼식에 가고 아무도 없더군요. 주방에 물 마시러 갔다가 냉장고 문이 잘 안 닫혀 있는 걸 발견했어요. 남편이 뭘 또 잘 못 넣어서 냉장고 문이 이런 건가 하고 열어 봤거든요.

못 보던 김치통이랑 반찬통 여러 개가 들어있더군요. 엄마랑 언니가 가져다가 넣어 놓은 거였어요. 주방 한 쪽 구석에는 새 수건 보따리도 있고, 쉽게 먹을 수 있는 1회용 국물 팩도 잔뜩 있었습니다.

결혼식 가려던 길에 시간이 남아서 들렀다고 하기에는 바리바리 싸서 가지고 온 짐들이 너무 많았어요. 저에게 반찬을 전해 주려고 작정하고 서둘러서 집을 나선 게 분명했습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방에 들어왔다가 침대 위에서 뭘 발견했는데요, 한눈에 알아봤지요. 마른 빨래가 개켜져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은 소파에 빨래를 안 쌓아두고 대신 침대에 쌓아둡니다. 생각날 때마다 한두 개씩 접어 놓거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때에는 쌓아 놓은 것 속에서 몇 개씩 골라서 꺼내 입거든요.

저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면서 '어차피 매일 갈아입는 옷인데 옷장에 넣을 필요 뭐 있어? '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마른 빨래를 개켜서 옷장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 도로 빼내 펼쳐서 입는다.' 빨래를 개키지 않고 쌓아두고 입으면 중간의 과정 몇 개가 생략되니 시간 절약 효과도 있지 않나요?

사실 그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겠어요? 귀찮음과 게으름 병이 도질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변명을 댑니다. 요 며칠 또 그 병이 도졌는데 불시에 엄마랑 언니가 집에 들러서 그 쌓아놓은 빨래를 보게 될 줄은 몰랐죠.

두 사람이 차곡차곡 개어놓은 침대 위의 빨래를 보니, 미리미리 좀 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팔순 넘은 노모와 쉰이 훌쩍 넘은 언니가 같이 늙어가는 딸이자 동생의 빨래를 개켜 준다는 건. 제 입장에서 좀 많이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그러고 나서 집을 둘러보니 어수선하더라고요.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올 때는 늘 제 한 몸 빠져나오기도 바쁘거든요. 조금 더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해서 살림을 단정하게 살아야겠다 다짐하며 대충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카페로 가는 중이라고 말이죠.

 

 

트리플 스트리트의 커피빈에 갔더니 엄마와 작은언니 내외, 남편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더군요.

저희 엄마가 굉장히 정정하셨는데 요즘 기운도 빠져 보이고 늙으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런 엄마가 막내딸 집에 들르셔서 빨래 개켜 놓은 걸 떠올리니 또 다시 반성하게 되었지요.

엄마에게 김치랑 반찬은 왜 해 왔냐고 물었습니다. 작은언니가 다 해서 가져온 거라더군요. 저희 작은언니도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아들 밤마다 학원으로 픽업 다니느라고 바쁜 사람이거든요. 그 와중에 동생 준다고 많은 반찬들을 해서 챙겨왔을 걸 생각하니 또 미안했죠.

제가 예전에 자매간의 이야기를 동화로 쓴 적이 있는데요, 9세 언니가 여동생을 미워하며 마음이 꽁꽁 얼다가 손과 발까지 꽁꽁 얼게 되는 '냉동 소녀 꽁꽁이'에 대한 내용이었거든요. 그 동화를 쓰면서 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이 모든 아이들을 다 보살펴 줄 수 없어서 엄마를 세상에 보낸 거라면, 그 엄마가 바빠서 막내딸까지 보살필 수 없을 때를 대신해서 언니가 있는 걸 거라고 말이죠.

 

 

그 마음을 담아서 동화책에 눌러 썼고요, 작가의 말에도 썼어요. 언니는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만난 첫 번째 친구라고 말입니다. 

작은언니는 저한테 평생 동안 양보하고 챙겨주고 안부 묻고 위로해 주고 편들어 주는 사람이에요. 언니한테 많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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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난 내 친구가 '우리 언니'라서 참 고맙습니다.

​​토요일 독서모임을 간 사이 서울에서 엄마를 모시고 작은언니 내외가 집에 들렀나 봐요. ​송도의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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