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생각

새벽을 여는 기분

불과 몇 달 전까지 나는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려고 해도 땅 속 뭔가가 내 몸을 끌어 당기는 듯한 기분을 날마다 느껴야 했다. 느지막히 일어나도 두통과 어깨통증, 등에서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통증들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심해졌다. 밤새 몸을 쓰지 않고 있었으니 근육이 굳어지면서 아픈 곳은 더 아픈 법이라는 걸 몸으로 깨우쳤다.  
 
늦게 시작한 하루는 활력을 떨어뜨렸고,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고 빈둥거리게 만들었다. 빈둥거리는 시간은 비생산적인 일들로 채워졌다. 부정적이거나 생기지도 않을 고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 내며 노화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부터 조금씩 일어나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만들어 나갔다.
 
최근에는 새벽에 4시쯤에도 눈이 떠진다. (알람이 눈을 뜨게 만든다. 5분 단위로 워낙 시끄럽고 짜증나게 반복하는지라...) 작년까지만해도 새벽 4시까지 안 잘 수는 있어도 새벽 4시에 일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었으니까.
 
물론 워낙의 저질체력으로 인해 새벽 4시에 취짐을 하던, 기상을 하던 나는 낮 시간 동안 낮잠을 자 주어야 한다. 그렇게 수면을 보충하지 않으면 일상이 완전히 깨져버린다. 지금도 여전히 몸은 아프고, 치료도 받아야 하고, 약도 먹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될 수 있으면 일찍 일어나는 쪽을 택하려고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난 어느날.... 베란다 창 밖을 통해 본 새벽 풍경때문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동안 서서히 깨어나는 새벽의 순간들을 마주한 그날. 나는 무척 설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은 내 힘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정말 몇 년 동안 내 안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귀한 감정이었다. 나는 그런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온 마음으로 말이다.

 

 

 
 
3년 가까이 살면서도 창밖 풍경에 감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야경이 아름다워서, 해돋이를 날마다 볼 수 있어서... 등등 감사할 거리가 얼마나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늘 당연하게 생각하고, 뭐든 조금 더 가지려고 했던 것이 나의 불찰이었음을 깊이 반성한다. 불만족하는 삶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지. 나는 작고 여린 것들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시간이 지나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진다. 나는 꽤 오랫동안 혼자 쭈그리고 앉아 거실 밖 풍경을 감상했다. 그날 왠지모르게 콧등이 찡하고 눈물도 조금 났다. 늙어 눈물이 흔해진 것은 아니라고 믿으련다. 나는 여전히 세상 모든 것에 감동할 줄 아는 감수성 풍부한 인간이라고 믿을 거다.

 

가족들이 잠든 시간. 조용히 준비해서 토요일 새벽 독서 모임에 나간다. 오전 7시에 시작하는 모임이란 게 내 평생 있었던가? 아,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전쯤 영어공부 좀 해보겠다고 새벽반 들은 적이 있었구나.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설렜을 것이다.

 

 

독서 모임 가는 길에 문득 본 하늘이 예뻤다.  비행기인지 제트기인지 뭔가가 지나가면서 만들어 놓은 긴 꼬리같은 흔적과 구름이 어우러진 하늘 풍경이 내게  '책 잘 읽고 와~' 하며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이런 순간 멈춰서서 감사해 하는 '나'로 평생 살고 싶다. 조금 더 나를 내려놓으며 살아야겠다. 내 삶에도 여러가지 기분 좋은 흔적들을 남기며 살고 싶다.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기  (2) 2019.05.14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  (2) 2019.05.13
어리눅다&드레지다  (2) 2019.05.11
과거의 신념을 버려라  (2) 2019.05.10
유대인 엄마의 힘  (4) 2019.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