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딸아이가 서점에 가서 김동식의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를 보게 되었다. 단편모음집이라서 몇 편 읽고 다른 책을 볼 생각이었다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다보니 약속 시간까지도 늦어버린 모양이었다.
10대 청소년도 한 번 보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할 정도로 마성의 힘을 가진 작가. 김동식. 노동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무한 상상의 이야기는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언제까지고 현재진행형일 듯 하다.
'그의 출현' 자체가 워낙 특별해서 작년에 <회색인간>이 출간되자마자 읽었다. 술술 잘 읽히는 짧고 쉬운 문장. 거칠 것 없는 사건 전개. 허를 찌르는 상황. 다 끝났나 싶다가도 모든 것을 전복시키고 마는 결말. 읽고 나서는 '의미'까지 떠올리게 하는 단편들.
책을 평생 10권 이하로 읽었다는 10년차 주물 공장 노동자 김동식은 타고난 천재성에 노력이 뒷받침된 괴물 작가가 맞았다.
그의 단편을 읽으면서 나는 '현대의 이솝'이라고 불리는 일본 작가 호시 신이치가 떠올랐다. 초단편 소설( 쇼트 쇼트)의 개척자인 호시 신이치는 1000편이 넘는 작품으로 전세계 수억명의 팬을 둔 유명작가이다.
김동식도 호시 신이치처럼 우리나라 초단편 소설 분야의 독보적 존재가 될 것이고 아마도 그의 근면 성실함 덕분에 세계 곳곳에 수많은 마니아층이 양산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회색인간>에 이어 딸아이의 성화로 <양심고백>을 읽게 되었다. 역시나 상황들이 하나같이 예상을 뛰어넘는다. 특이하고 때론 기괴한데 보면 그냥 빨려 들어간다. 재밌다. 26편의 단편들이 다 제각각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레버를 돌리는 인간들'은 외계인이 지구를 떠나면서 사람들의 손등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버를 선물로 주고 간 이야기이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드드드드' 소리가 나며 나이를 먹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틱틱틱틱' 소리를 내며 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등가교환의 규칙이 적용되어서 전 세계에서 늙어버린 사람들의 나이의 합과 젊어진 사람들의 나이의 합이 같아야 한다.
사람들은 젊어지기 위해 자신의 손등의 레버를 부지런히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대기 시작하지만 등가교환에 의해 또 다른 누군가가 시계방향으로 돌려 늙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쩌다 생길지 모르는 젊어지는 확률에 '내가 당첨'되기 위해 사람들은 시도때도 없이 레버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그러나 시계방향으로 돌려 늙어버리는 사람이 생겨야 젊어질 기회가 늘어난다는 생각에 범죄 형량을 레버 돌리는 것으로 대체하면서까지 사람들은 젊어지는 것에 집착한다.
결국 레버를 돌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레버 휴가를 내고 급기야 레버 퇴직까지 감수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젊음을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시간이 남을 때마다 혹은 시간이 없을지라도 오로지 레버만 돌린다. 틱틱틱틱.....
사람들은 그렇게, 시간을 얻기 위해 시간을 버렸다. 38쪽
'서울 숲 게임'은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한 김남우(또 김남우이다. 김동식 작가는 같은 이름을 계속 쓴다. 캐릭터 이름짓는 데에 시간을 들이느니 스토리에 신경쓰고 싶어하는 것 같다.) 교수의 사생결단 스토리이다. 납치범의 지시로 서울 숲에서 두 명의 남자와 기상 천외한 게임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점수를 매겨 승자를 가려야만 한다. 김남우는 딸을 구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게임에 임하지만 젊은 남자에게 승리를 빼앗기고 만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며 불공평한 게임이라고 절규하던 김남우 교수 앞에 납치범이 나타난다. 납치범은 김남우에게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책망을 듣고 자퇴한 그의 제자였다. 납치범은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이 틀리셨습니다. 이제 아셨죠? 사람이 아무리 간절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요. 교수님이 멋대로 판단하셨던 그 시절의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출발선 자체가 달랐을 뿐입니다. 교수님이 느꼈던 불공평함처럼 말입니다." 78쪽.
초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사람이 한명씩 죽어나가는 것을 알고도 그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면
하늘에서 떨어진 공중전화 부스에 노화방지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가진자들만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면
내가 죽는 대신 매달 무고한 젊은 사람이 죽는다면,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부 정자 기능으로 태어난 나의 자식들이었다면
말더듬는 장애를 고쳐 성우가 되려는 아들을 오로지 공부만 시키기 위해 말더듬이로 남게 하는 부모가 있다면.....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김동식이 들려주는 환상 이야기 속으로 무작정 따라 들어가 본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그 사이,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주변과 세상을 둘러보게 된다. 문학의 기능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필요할까???
나한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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