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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나의 말 그릇은 믿음직한가?

'말 그릇'을 다 읽은 며칠 전 오후.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한참동안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책에서는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했는데.. 평소 나의 말에 비추어 내 인격과 됨됨이를 되돌아 보았다. 

나의 말 그릇은 어떠한가? 너무 좁고 작고 얕아서 누구의 말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그럼 누구에게나 든든하고 정겹고 힘이 되는 말을 해줄 정도의 그릇은 되는가?  밖에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쓴 만큼 집 안에서도 좋은 사람이었나? 가족에게 나의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공허하거나 매정함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믿음직스러웠을까? 끊임없이 반문하게 된다.

갈등에 처했을 때 상대방의 결점과 한계를 찾아내고 당장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취약점과 죄책감을 귀신같이 건드리기 때문에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더욱더 나빠진다. 그리고 이런 식의 말 습관은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21쪽

아이와의 관계에서 이러한 실수를 얼마큼이나 했을지 떠올려 보며 반성을 했다. 마침 아이를 데리러 전철역에 갔다가 책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참 많이 부족한 엄마같아. 미리 미리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읽고, 읽은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면 아마도 너한테 지금보다 나은 엄마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미안해."

"(이 엄마가 상한 걸 드셨나????)아니야. 엄마. 엄마는 나한테 엄마로서 충분히 잘 해줬어. 내가 잘 못 따랐을 뿐이지."

"아냐. 내가 더 다정하고 부드럽게 말하며 네 입장과 감정을 이해해 주었어야 했는데. 엄마는 늘 남들의 입장, 남들에게 보여지는 너, 남들로부터 평가받는 우리. 그런 거에 연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온전히 네 감정을 편들어 주지 못했어. 아주 큰 실수였지. 엄마가 많이 부족했어."

"(남들 편 들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이러나 몰라.) 그래도 엄마, 아빠가 얼마나 잘해줬는지 알아."

작년부터 까칠의 정점을 찍고 있는 딸아이는, 내가 갑자기 고해성사하듯 지난 날 미안했던 일들을 풀어 놓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진작에 내가 낮은 포복의 자세로 아이 앞에서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면 우리는 갈등없이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어쨌든 아이에게 선언했다. 앞으로는 내 본능에만 치우친 날선 감정 표현이나 말투를 자제하겠다고.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으나.. 나는 노력하고 싶다. 더 좋은 어른이며 엄마이고 싶으니까.

사람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타인에 비해 가족을 너무 편히 생각하다 보니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경계를 넘나들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 넘지 말아야 할 분명한 경계가 있음에도 감정이 격해지면 그런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래서 아픈 말, 상처되는 말, 잊힐 수 없는 말들을 마구 뱉는다. 뱉어낸 말들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미 가족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버렸으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부부끼리, 형제자매끼리 서로가 서로를 말로 할퀸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말의 날카로움'으로 내 소중한 가족을 베어 버리기 전에 늘 나의 감정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순간 정체불명, 본말전도의 '말폭탄'이 내 가족에게로 날아가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실제 폭탄만큼 위험한 말의 폭탄도 분명 있다.

얼핏 보면 '화'로 보이는 감정도 원래는 화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감정은 미묘하게 원래의 색을 바꾸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려면, 처음에 가졌던 기대가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게 만들려면, 먼저 자신의 '오리지널'감정을 찾아야 한다. 

(요약-예를들어... 선배가 일 못하는 후배에게 화를 낸 이유는, 후배가 정신 차리고 일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후배는 서운하기만 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느낀 오리지널 감정은 실망감, 즉 잘 할 수 있는 후배가 못해서 실망한 것인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화'로 나옴.)

여기서 '실망해서 화가 난 것 아니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망과 화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실망이라고 생각하면 '너에 대한 믿음과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함께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화라고 생각하면 '너 때문에 생긴 분노'만 남겨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인데, 화의 목적은 상대방을 물러서게 하고 웅크리게 만드는 데 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 버린다. 

이것은 감정이 원했던 게 아니다. '감정'은 당신을 해치려고 온 도둑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다. 당신의 말이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그러니 감정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다. 70쪽

감정을 무시하거나 묻어두는 것은 일종의 감정노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감정을 제대로 알고 그에 맞는 '올바른 말'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이와 함께 누구나 '상황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공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역시 제대로 된 말 그릇을 키우는 방법중 하나이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스스로 겪어왔던 삶의 사연으로 인해 자신만의 관점이나 공식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므로 타인의 공식을 폄하하며 내 공식만을 강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 공식은 '각자의 삶이 만들어낸 고유한 무늬'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당신의 공식도, 타인의 공식도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낸다. 타인의 눈에는 부족하고 부적절해 보일 수 있지만 감히 비난하고 몰아세울 일은 아니다. 어제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완벽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NOT OK에서 방황하는 시간보다 OK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간다는 뜻 아닐까. 117쪽

누구나 원하지 않는 공식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 그 공식이 인격의 차이에서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충고할 수 없게 되고, 그야말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진다. 그 순리를 알게 되면 비로소 말이 무거워지고 깊어진다. 그런 깨달음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134쪽

자꾸 멈칫멈칫하며 지난 날의 내 실수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상처들로 인해 생긴 공식 때문에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된 이들에게 나는 과연 관대했을까? 그들의 공식을 '집착'이라 규정짓고 답답해하고 대화하기를 피곤해했던 건 아닐까? 딸아이의 여리고 아픈 공식을 알면서도 어서 빨리 떨치고 일어서라고 채근했던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이 먹는 만큼 지니고 있는 생각이 저절로 깊어지는 건 아니다. 고집스럽게 나만을 바라보면서 귀 틀어막고 늙어간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내 가족과 주변에게도 고통일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날마다 닦고 또 닦아 나가야겠다. 비록 반짝이지는 않더라도 탁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날카로움이 되어 상처입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말  그릇과 나의 감정을 계속 매만지며 살아야겠다. 

우리 모두는 말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분명 내 것인데도, 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과 생각과 습관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여 수없이 많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말 그릇을 인식한 사람, 멈추고 돌아보는 사람,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그 후회의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다. 조금씩 자신의 말 그릇 안에 마음과 사람을 담아낼 수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를 일으키고, 다시 달리게 할 수 있기를.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길 응원한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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