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중고차 한대를 살 거라고 했다. 그 친구는 운전을 잘 못해서 남편차만 얻어 타고 다녔었다. 차가 필요한 일자리를 새로 구했나 보다 생각했는데 친구는 고등학교 입학한 아이를 픽업하기 위한 용도로만 쓸거라고 했다.
아이 픽업은 일자리보다 중요한 일거리이기는 했다.
그래서 이 친구는 한동안 중고차 가격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결론은 차를 못 샀다는 것이다. 아니, 안 샀다. 친구 말에 의하면 소형차가 생각보다 비쌌고 적당한 가격의 차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더니 중고차거래소에 나온 중고차를 어떻게 믿냐고 했다.
(그럴거면 중고차 산다고는 왜 한 거임?)
그럼 새차를 사라고 했더니 그건 비싸서 싫다고 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자꾸 전화하는 거임??)
그러면서 중고차거래소야말로 대표적인 레몬시장이라고 말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석달째 고이 들어있는 그 레몬?
얇게 저며 맹물에 타먹으면 피부미용에 좋다고 해서 샀다가 너무 시어서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그 레몬?
친구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상당히 많은 유형의 아줌마인데...레몬시장에 대한 이 친구의 설명은 아래와 같았다.
"야, 너 레몬을 깎아서 막 먹을 수 있어?"
"헐, 그걸 어떻게 먹어. 나 신거 못 먹어."
"그러니까 레몬이라는 게 그런 거야. 생긴 건 오렌지랑 비슷한데 맛은 완전 구린 거."
"구린게 아니라 신 거겠지."
"그니까. 시어서 잘 못 먹지. 보기에는 좋은데 먹기에는 영 그런 거. 그런 제품을 레몬이라고 하지. 중고차시장에 나온 중고차들이 그래."
"너 중고차 너무 까는 거 아니야?"
"아니야. 너도 생각을 한 번 해봐. 중고차거래소라는 곳이 그래. 거기에 중고차를 팔러 온 사람이 있어. 자기 차 상태가 좋아. 근데 매매상은 제값을 안 줘. 깎을려고 하지. 그러면 팔러 온 사람이 기분이 상해서 차를 안팔아. 그런데 교통사고 난 적 있는 속상태가 안좋은 차를 팔러 온 또 다른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대충 가격을 쳐줘도 매매상한테 팔아. 그러니까 중고차 시장에는 좋은 상태의 차보다는 그렇지 않은 차가 많다는 거야. 오렌지보다 레몬이 많은 이유야. 그래서 중고차시장을 대표적인 레몬시장이라고 그래왔지. "
"그렇구나. 오렌지는 좋은 거, 레몬은 별로인 거라는 거지?"
"응, 근데 중고차 사려는 사람은 좋은 물건을 싸게 사고 싶지만 중고차매매상은 비싸게 팔고 싶거든. 그러려면 중고차의 상태를 속속들이 말할 수없는 거야. 교통사고 났다가 싹 고친 거면 나같은 아줌마가 어떻게 그걸 구별해? 못하는 거야. 이런 걸 정보의 비대칭이라고 하거든."
"뭐? 그건 또 뭐래?"
"판매하려는 자와 구매하려는 자 사이에 정보가 완전히 알려지지 않는 걸 말해. 한마디로 중고차매매상이 곧이곧대로 차 상태를 얘기해 주지않으니까 구매자는 중고차를 사고 나서 속았다. 비싸게 샀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누가 들으면 중고차매매상이랑 웬수진 줄 알겠다. 너 당근마켓인가 거기 잘 이용하잖아. 다 중고품인데 그럼 거기도 레몬시장이겠네."
"거긴 안 그래. 사람들이 옷이나 책이나 그릇같은 걸 엄청 싸게 내놓거든. 가격이 싸고 또 동네 아줌마들끼리 직거래니까 믿고 사는 거지. 설마 아줌마들끼리 속이고 그러겠니? 짝퉁이면서 명품이라고 하겠어?"
"뭐래? 똑같은 중고시장인데 자동차는 까고, 당근은 좋다 그러고. 너 당근마켓 홍보사원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인 거지. 아무리 중고라도 자동차 가격은 비싸니까. 오천원, 만원 하는 당근마켓에서 물건 사고 후회하는 수준이랑은 비교가 안되는 거지."
"하긴 그렇겠다."
"너도 당근마켓 들어가봐. 네가 사는 동네 인증이 되면서 그 근처 중고 물건들이 쫙 나와. 별거 다 있는데 구경하면 재밌어."
"그나저나 애 픽업은 어떻게 해?"
"뭔 놈의 픽업이야. 그냥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어. 공부도 딱히 안하는 놈을 내가 미쳤다고 태워다니겠냐?"
"너희들 또 한판 싸웠구나. 오렌지 같은 외아들 아냐? 잘 해줘라."
"웃기시네... 레몬이다."
중고차 시장을 건너 건너 당근 마켓을 통과한 우리들의 대화는 각자 자신의 아들과 딸을 신나게 까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냐만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식은 부모에게 레몬일 수 없다는 것. 남들이 아무리 "댁의 아이, 레몬이랑 흡사해요"라고 손가락질해대도 나만큼은 "내 아이는 오렌지다" 목청 돋우며 믿어주는 것. 그게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 아닐까.
'오렌지같은 내 새끼랑 오늘 하루도 행복해야지.'
위 전체 이미지 https://unsplash.com/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접떨다&주럽떨다 (0) | 2019.04.14 |
---|---|
나, 절약의 아이콘? (0) | 2019.04.13 |
열네 살, 신문을 읽어야 할 나이. (0) | 2019.04.11 |
친환경 비닐봉지가 있을까? (0) | 2019.04.10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0) | 2019.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