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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딸아이가 서점과 도서관을 다니면서 보는 책들 중에는 에세이가 많다. 그 중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반납 기한을 놓쳐서 내 폰으로 독촉 문자가 왔다. 내 이름으로 된 대출증으로 빌리고 제때 반납을 안했으니 죄송함은 내 몫이다.  딸 대신 반납 하러 가기 전에 책표지를 보았다. 해변에 속옷 차림으로 드러누운 남자와 남자 등 위의 고양이 그리고 해변. 궁금함에 읽기 시작했다. 40대에 접어 든 회사원 겸 일러스트레이터 미혼남이 쓴 퇴사 후의 이야기였다.

 

요즘 에세이는 '느긋하게, 쉬엄쉬엄, 못해도 괜찮아'류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지친 사람들에게 쉴 공간, 숨통을 틔워주는 책이 팔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데 더 빨리, 더 열심히 살라고 주문하며 독촉하는 책이 무슨 소용이랴. 일어설 기운이 없을 정도로 영혼까지 털려버린 사람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해주는 책이 있다면 구세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니까....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한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충분히 읽힌다. 또한 열심히 살아본 전력이 있는 사람이기에 '열심히 살 뻔'이라는 상황도 상정할 수 있는 것이리라 짐작했고, 내 생각이 맞았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줄기차게 노력하며 살아 온 이 시대의 청년이었는데 그가 중년으로 접어드는  지금까지 사회는 노력만을 요구하고 바뀌지 않자, 그는 퇴사를 결정한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김보통 작가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와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이 오버랩되었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 온 청춘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아픔을 겪으면서 엮어낸 이야기들은 마음을 저리게 만든다.  

 

하완 작가는 더 이상 돈을 벌기가 싫어진다.(돈이 싫은 것은 아닌 듯 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열심히만 사는 삶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실행에 옮긴다. 본인은 딱히 품은 뜻이나 대책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본인 인생을 건 실험이라고 말하지만, 그 실험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 삶에서의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홍대 미대를 4수 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만약 떨어졌으면 또 다시 도전했을 거라고 말한다.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면 원하는 것을 꼭 이룰 수 있으니 '끝까지 해' 같은 교훈을 전할 의도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세상의 수 많은 길들 중에 '이 길 아니면 안돼'를 외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고 조언한다. 그 길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가 본 순간 그 길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또한 3수를 했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다.ㅜㅜ) 게다가 원치않는 대학과 학과를 갔다.(그럴 경우 얼마나 난감한지는 겪어본 사람 대부분이 알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51쪽

 

우리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을 응원하고 존경해왔다.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은 집념도 야망도 끈기도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하던 일을 그만둬야 할 정도로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나 환경이 나빠진 것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뛰기 시작하면 끝까지 같이 해야한다는 철칙이나 강박관념이 있지 않은 이상 중간 이탈자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내가 선택했지만 더 이상 어떤 기쁨도 어떤 희망도 어떤 의미도 얻을 수 없는 일이라면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포기해 버려야 내 안의 빈자리가 생기게 되고 그 곳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퇴사하는 직장인. 더는 못 살겠어서 갈라서는 부부. 학교를 떠나는 학생. 가게를 닫는 자영업자. 누군가는 열정도 재능인데, 그 재능이 없어서 중도 탈락하는 거라 비아냥댈지 모르겠으나 한 번 뿐인 인생을 자꾸만 남들에게 보여주려고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은 그 공간에서 '열심히 살 뻔 해서는' 안된다. 열심히 살 수 있을 공간을 찾아서 길을 떠나고, 발견한 그 곳에서 '때론 여유있게 살아야' 한다.

 

이제껏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것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삶이었다. 그리고 이제 반대편으로 치우친, 노력하지 않는 삶을 시험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 끝 양극단을 오가는 치우친 불균형의 삶이지만, 양쪽을 다 경험하고 나면 균형을 맞추게 되지 않을까? 흔들리던 오뚝이가 바로 서듯이 그렇다면 이 불균형은 옳다. 너무도 치우쳤던 이전 삶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이 정도의 반작용은 있어야 힘의 균형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112쪽

 

최선을 다해 살아온 당신에게.....그렇지만 어느샌가 무리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저만치 흘러가 버린 당신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잔혹한 말대신 현명하게 적절히 포기하고 당신을 아끼며 새로운 모색을 해 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당신이 무엇을 잘 하고, 재미있어 할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각보다 특이하고 재미난 것을 잘 할지 누가 알겠는가. 메마른 당신 생에 윤기를 줄 바로 그것은... '죽을만큼 열심히' 보다는 '잠깐 쉬어가는' 여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