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 한명이 있다.
2-3년 동안 연락 한번 안 하다가도
갑자기 나의 필요에 의해 문자를 남기면
득달같이 연락을 취해주는 친구.
통화하게 되면
바로 어제 만나서 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어색함도, 거리감도 없는 친구.
아주 오랜 세월
떨어져 지냈지만
하소연할 일이 있을 때면
불현듯 떠오르는 친구.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학과 공부였지만,
나의 학점이 이상하리만치 높을 수 있었던 건
공부할 때마다 내 곁에서 늘 함께 해준 친구 덕분.
그녀는
대학 연구실에 근무하며 강의를 한다.
며칠 전
연구실로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알겠다고 답하고 나서...
그녀랑 소식을 주고 받았던 옛날의 흔적들을 뒤적여 보다가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내가 머리감을 때는 엄마가 도와줍니다.
무려 13년 전에
그녀는 이런 글귀에 마음이 동했나 보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지금껏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는 그녀가...
나는 당시 갓 세살이 된 딸아이를 앉혀 두고
이 글을 읽어 주었다.
그리고 내 딸아이가 '머리 냄새 나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랐다.
어린 딸아이에게
모든 이들을 다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바란 적은 없다.
그건 욕심이니까.
최소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왔다.
그러나
내 딸아이가 남들을 감싸안아 보기도 전에
'머리 냄새 나는 아이'로 낙인 찍힐 줄 몰랐다.
우리는 모두...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머리 냄새 나는 인간'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 냄새를 끝끝내 못참아 내는
누군가도 세상에는 아주 많이 존재한다.
그런 누군가 때문에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 곁에는,
내 딸아이의 곁에는,
'머리 냄새 나는 인간'이 모여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탱해 주며 살아갈 테니까.
나의 그녀처럼.
내 딸아이의 그녀처럼.
우리는
곧
그녀를 만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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